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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해외매각의 저주 / 박점규

등록 2018-03-19 18:00수정 2018-03-19 19:05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은 경기도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안에 있는 노조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회사, 23년 풍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1995년 6월 그는 축하를 받으며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그가 배치받은 엘시디사업부는 박판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의 핵심인 광시야각기술(FFS)을 갖고 있었다. 그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꿈꿨다.

2001년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바꾸고, 엘시디사업부를 하이디스(하이닉스+디스플레이)로 분사시켰다. 김대중 정부 시절 채권단은 ‘외자 유치’를 명목으로 하이디스를 중국 비오이(BOE)그룹에 팔았다. 비오이는 하이디스 수익금으로 중국 공장을 지었고, 기술을 빼돌렸다. 하이닉스 때 2천명이던 직원은 반토막 났다. 비오이는 인수 3년 만인 2006년 하이디스를 부도냈다. 하이디스는 ‘전자산업 먹튀 1호’가 되었다. 엘시디 기술이 없었던 비오이는 2017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5위를 차지했고, 올해 중국은 한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생산국에 오를 전망이다.

‘해외매각의 저주’는 계속됐다. 채권단은 2008년 하이디스를 대만 기업 이잉크에 팔았다. 이잉크는 투자와 채용 대신 공장을 줄여나갔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광시야각기술 특허 임대로 2014년 8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뒤 2015년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상목씨는 고용노동부를 찾아갔다. 노동부는 “해고되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찾아가 일자리와 기술을 지켜달라고 했으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100곳이 넘는 국회의원실을 방문해 먹튀 방지 법안을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일정 규모 외국인투자기업이 폐업하거나 10% 이상 감원하려면 미리 산업부 장관에게 신고하게 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국회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그와 동료들은 대만, 광화문, 국회에서 3년을 싸웠다. 도적떼들이 약탈을 일삼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그는 “이게 나라냐?”고 되물었다.

1997년 외환위기, 국제통화기금은 노동 유연화와 기간산업의 해외매각을 요구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을 진압한 뒤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통과시켰다. 채권단은 대우자동차와 하이디스를 외국에 팔아치웠다. 노무현 정부 때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된 쌍용차는 ‘자동차 먹튀 1호’가 됐고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외매각 20년은 인생매각 20년이었다.

지엠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먹튀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먹튀가 두려워 중국 기업 매각에 반대하고 있다.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와 대우상용차를 사들인 타타도 언제 야반도주할지 모른다. 내 나라에서 일하면서 외국기업 회장님의 자비와 선처를 호소해야 하는 신세다.

2008년 금융위기. 볼보자동차가 대규모 인원감축 위기에 처하자, 스웨덴 정부는 생계를 보장하면서 직업교육을 통해 2635명의 이직을 지원했다. 볼보의 최대주주가 된 중국 지리자동차는 연구소를 신설하고 공장을 확장했다. 해고자의 60%인 1556명이 회사로 돌아왔다.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해고한 자리에 비정규직을 쓸 수 없는 스웨덴 노동법 때문이었다. 며칠 전 제네바모터쇼에서 볼보의 XC40이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김득중 지부장이 곡기를 끊은 지 20일. 해고 9년에 네번째 단식인데, 회사는 해고자 130명 중 8명만 채용하는 면접을 강행했다. 해외매각을 신봉한 민주당 정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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