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진정’(眞情)이란 명사 뒤에 ‘성질’을 뜻하는 접미사 ‘성’(性)을 붙여서 만든 말로 추정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대신 국립국어원이 온라인 질의응답에서 이런 풀이를 전할 뿐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애초 외국어사전 편찬자들이 ‘authenticity’라는 외국어에 대응할 우리말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던 이 낱말이 80년대 운동권과 90년대 문학비평의 손을 타며 일상에서 쓰는 언어로 자리매김했다는 맥락을 짚은 바 있다. 그는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이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때 ‘진정성’이 확보된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성’의 실체는 늘 모호하기에, ‘진정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점차 ‘진정성 없는 것’을 가려내고 배척하는 데에 더욱 능숙해진다. 캐나다 출신 철학자 앤드루 포터는 2010년 저작 <진정성이라는 거짓말>(2016·마티)에서 ‘진실감’(truthiness)이란 신조어가 오늘날 ‘진정성’이 활용되는 맥락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만든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내 말은 진실이고 남의 말은 진실일 수 없다. 진실감은 내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인 동시에 ‘내가’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교과서 좌편향’을 주장하며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했던 전직 대통령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빨갱이’에서 ‘종북’으로, 또 ‘페미나치’ ‘메갈’ ‘오염된 미투’ 등으로, 시대에 따라 ‘감별 대상’은 늘 바뀐다. 그러나 ‘내가/느낀다’를 기준으로 삼아 ‘진정성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감별사’들의 존재는 여전하다. 그들의 새된 목소리에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을 가로막혀야 하는 아픔들 역시 여전하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circle@hani.co.kr
앤드루 포터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영문판 표지. 아마존닷컴 갈무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진실감’이라는 신조어를 제시하는 미국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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