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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포틀래치의 교훈 / 김성경

등록 2018-04-04 18:28수정 2018-04-04 19:28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쟁 위기에 허덕이던 남북이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한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마주앉는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긴장으로 치닫던 남북 대치 국면의 전면적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해석은 다양하다.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에 북한이 굴복한 것부터, 강대국 틈에서 체제 보장을 모색해온 북한의 몸부림을 핵의 정치학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러내야만 했던 남한 정부의 절박함과,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북한의 열망, 거기에 선거를 앞두고 돌파구가 필요한 트럼프 정부의 선택이 맞아떨어졌다는 무난한 분석도 가능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다른 해석이라고 할지라도 논의의 시작은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국제정치의 작동방식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즉, 국제관계에서의 국가는 철저하게 계산하여 관계를 맺는 존재로 가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는 작은 빈틈이 있다. 대치하고 있는 양쪽 중 하나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환과 이해관계라는 맥락에서 싸움을 ‘먼저’ 멈추는 일은 상대방의 ‘공격’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역으로 치명적 공격을 감행할 확률도 있다. 배반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화해 가능성을 차단하며, 결국 파멸적 결말로 내닫게도 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두려움에 갇혀 싸움만을 계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성적 계산과 등가물 교환을 넘어서는 상생적 관계를 지향해왔다. 사회학자 모스가 아메리칸 인디언의 ‘포틀래치’를 분석하며 주장한 것처럼 인류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협력하고자 했던 것이다.

‘식사를 제공하다’라는 뜻의 포틀래치는 부족 사이에 선물을 교환하는 의례로서 상호간의 협력적 관계 구축 원리를 함축한다. 이는 ‘주고-받고-답례’하는 선물의 의무로 요약되는데, 특히 선물을 ‘주는 것’의 상징적 힘이 상호간 연대를 가능케 한다. 선물을 주는 이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후한 호의를 베풀고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도덕 우위, 존경,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선물을 받은 이는 더 큰 포틀래치로 보답함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지키려 한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권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선물’을 먼저 북한에 내밀었고, 북한은 대화 복귀와 평창올림픽 참가라는 ‘답례’를 한 바 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한-미 동맹이라는 한국 사회의 절대적 가치를 함축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 힘겨운 결단이었던 만큼 북한의 답례 의무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북 공연단의 공연에 깜짝 참석하면서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나, 북한 고위급의 입에서 나온 ‘사죄’라는 말로 미뤄볼 때 남북은 조금씩 서로를 인정하며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듯하다.

급변한 북한의 태도를 두고 ‘평화공세’라는 의심도 있고, 핵, 평화, 체제 인정 등의 고차방정식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먼저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선한 호의가 지금의 남북관계 대전환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사실도 되새길 만하다. 만약 남북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고자 한다면 협상 과정에서의 정교한 전략 준비 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꺼이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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