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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어느 경찰관의 부상 / 박점규

등록 2018-04-09 18:38수정 2018-04-09 22:01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경력 3년차 젊은 형사는 경찰 직업이 자랑스러웠다. 몸 사리지 않고 일했고, 빨리 승진해 주위의 부러움도 샀다. 어느 날 범인을 체포하다 어깨를 다쳤다. 외상은 크지 않았지만 통증이 심했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제집 드나들듯 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밥 먹듯 맞았다. 팔굽혀펴기 200개를 하던 그는 부상 뒤 한 개도 할 수 없었다.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3개월 후 진통제가 전혀 듣지 않아 큰 병원을 갔다. 찢어진 어깨에 염증이 생기고 관절액이 새어나와 동전만한 고름주머니가 생겼다. 어깨를 세 군데나 뚫고 연골 부위를 꿰맸다. 2015년 류현진 투수가 받은, 재활만 3년이 걸리는 슬랩 수술이었다. 그는 6개월 재활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2주 만에 출근했다. 팀장은 인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다치기 전처럼 순찰과 외근을 했다. “나도 허리를 크게 다쳤는데 이틀 만에 나갔어. 병을 이긴다는 의지를 가지면 안 나을 것도 다 낫는다.” 상관의 말이었다. 어깨 통증이 수술 전보다 더 악화돼 대학병원을 찾았다. 재수술을 해야 하고,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제때 치료를 받았다면, 수술 후 재활을 했다면 2년 만에 마운드에 선 류현진처럼 다시 멋진 경찰로 활약할 수 있을 텐데….

상관 갑질이 어깨를 짓이겼고, 인력 부족이 연골을 후벼팠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추가 상병에 대해 일부만 승인했다. 비현실적인 수가 때문에 치료비 1500만원 중 공단에서 받을 돈은 500만원. 월급 손실을 더해 2000만원이 날아갔다. 앞으로도 매달 150만원 이상 손해다.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에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책임을 떠넘기며 ‘이첩놀이’만 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제복을 입고 국민을 위해 일하다 다쳤는데 조직도 사회도 국가도 무관심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가 직장갑질119에 보낸 편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 동안 자살한 경찰관이 104명이었다. 안전사고, 범인 피습 등 일하다 다친 경찰은 8820명, 연평균 2천명에 육박했다. 신청자 중 590명은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다. 까다로운 승인요건 탓이다. 지구대 경찰을 다룬 드라마 <라이브>에서 선배 경찰이 말한다. “국가가 경찰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경찰들이 부산 사상구에서 “경찰을 미친개로 만든 장제원은 국회의원 사퇴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정권의 사냥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자유한국당 성명에 대한 항의였다. 경찰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 회원들은 인증사진 시위를 했다. 얼굴과 이름까지 공개한 이례적인 경찰 시위. 그런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경찰노조가 있었다면?

경찰개혁위원회가 ‘경찰노조는 시기상조’라며 직장협의회를 권고했다. 병가도 제때 못 쓰는 직장, 상명하복 갑질이 만연한 경찰사회에서 직장협의회가 ‘반상회’를 넘어설 수 있을까? 쉽게 얻은 권리는 쉽게 허물어지지만, 투쟁으로 획득한 권리는 오래간다. 많은 선진국에서 경찰노조가 만들어진 이유다. 경찰노조가 권익보호를 넘어 권력의 부당한 지시 거부까지 나아간다면 영화 <1987>의 고문경찰, 백남기 농민 조준발포 경찰도 사라지게 된다.

일선 경찰들이 ‘미친개’ 발언에 맞서 시위를 한 것처럼, ‘갑질 미투’ 운동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높은 분’한테 당한 갑질을 고발하는 운동. 내 삶을 바꾸는 일의 시작은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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