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
애니멀피플 팀장
“당신만의 특별한 개, 고양이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 기업 ‘퍼페추에이트’ 누리집에 가면, 클릭 한 번으로 개, 고양이 세포를 저온 보관할 수 있다. 먼 훗날 싼값에 복제할 수 있도록 미리 세포를 보관해두는 것이다. 신용카드로 140만원만 결제하면 며칠 안에 채취 키트를 보내준다. 반려동물의 구강이나 피부에서 세포를 긁어 보내주면 끝이다.
1억원 이상을 들이면 당장 복제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전공학 기업 ‘비아젠’과 황우석 박사가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 기술을 갖췄다.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지난해 죽은 반려견 ‘서맨사’의 세포에서 복제견 ‘스칼릿’과 ‘바이올렛’을 얻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수십~수백마리의 상업적 복제견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개 복제 기술의 발전은 더디기 그지없었다. 2001년 복제묘 ‘시시’가 탄생한 고양이와 달리 개는 난자를 성숙시키는 게 쉽지 않았고 실패율도 높았기 때문이다. 벽을 무너뜨린 건 서울대 수의대에 있던 황우석, 이병천 교수였다. 이들은 2005년 아프간하운드를 복제한 ‘스너피’를 내놓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복제견 스칼렛과 바이올렛.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인스타그램
서울대 황우석(가운데)·이병천(왼쪽)·미국 피츠버그대 섀튼 교수 등이 2005년 8월3일 낮 서울대 수의과대학 잔디밭에서 피부세포를 이식해 복제수정란을 만든 뒤 자궁 착상을 통해 복제에 성공했다는 개 ‘스너피’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둘의 성공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결이 있었다. 복제견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수천개의 난자가 필요하고, 수정란이 들어갈 수백개의 자궁이 있어야 한다. 1095개의 복제 배아가 123마리 암캐에 이식되어 살아남은 단 한마리가 스너피였다. 논픽션 작가 에밀리 앤더스가 <프랑켄슈타인의 고양이>에서 꼬집은 대로 “털이 무성하고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개들의) 마을” 하나 정도는 있어야 복제견이 나온다. 한국엔 그런 곳이 많다. 식용견을 생산하는 개농장이다.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 스캔들로 학교를 떠났고, 이병천 교수가 같은 자리에서 복제 연구를 계속한다. 지난해 12월 이 교수 연구팀에서 일했던 이가 자신이 본 넉달 동안에만 약 100마리의 개가 드나들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출처는 850마리를 기르는 충남의 개농장이었다.
복제견 연구에 식용견이 쓰이는 이유는 단 하나, 값이 싸서다. 열악한 환경의 농장과 실험실을 오가며 암캐들은 난자를 채취당한다. 개농장은 연구자들에게 저가 난자은행이자 대리모 아파트였다. 서울대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이 사실을 알고서도 강제할 수 없다며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농촌진흥청은 ‘반려동물산업 활성화 핵심기반기술 개발사업’을 이끄는 반려동물연구사업단장을 공모했다. 이병천 교수가 최근 사업단장으로 임명됐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11일 “원래 연구 영역이던 반려견 복제는 지난해 국회 예결위에서 지적받고 빠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반려견 유전자원 수집, 보존, 증식 기술 개발’이 여전히 연구 범위로 제시되어 있어, 동물보호단체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6번째 날>에서 미래인들은 ‘리펫’이라는 복제 회사에서 반려동물을 분양받아 기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복제견은 수많은 생명의 무덤 위에 피어난 초라한 꽃에 불과하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도 스너피 복제 직후 “아무리 애타는 반려견 주인이라도 다른 개에게 100번 이상 임신을 시켜 한마리의 개를 얻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사치스러운 욕망은 무고한 희생을 먹고 자란다. 정부가 이런 기술을 지원하려면 최소한 윤리적 기준은 만들어놓고 시작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되돌아봐야 한다. 바브라님! 이렇게라도 죽은 친구를 보고 싶나요?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