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시진핑 중국 주석은 4·27 남북정상회담 뒤 문재인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일주일 남짓 거부했다. 당시 청와대는 “시 주석이 인도 총리와의 행사 때문에 지방에 머물고 있어 통화가 늦어진다”고 궁색한 설명을 내놓았으나, 외교가에선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를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에 대한 시 주석의 불만 표시”라는 얘기가 돌았다. ‘남·북·미 3자’를 언급한 것에 대해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는 것이다. 덩치는 산만한 나라가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사탕 안 사준다고 투정하듯 하는 게 참 ‘모양 빠진다’고 생각했지만, 효과가 아주 없진 않았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종전선언은 남·북·미 3자가 하더라도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4자가 한다”며 중국 달래기에 나섰고, 또 7일을 기다려 성사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에선 두 정상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중 두 나라가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논의 참여에 집착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11년 전인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밝혔을 때도 중국은 자국의 배제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중국이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라는 것이다. 정전협정 변경을 논의하는 데 협정 당사자가 어떻게 빠질 수 있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일인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에서 현재 아무런 군사적 적대관계가 없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은 1958년 모두 철수했다. 당시 싸웠던 미국과는 1979년 수교했고, 우리와도 1992년 수교해 적대관계를 해소했다. 굳이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을 상대가 이미 없어졌다. 현실적으로 직접 군사적 대치 관계에 있는 남북이나, 주한미군을 파견해놓고 있는 미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중국은 1994년 9월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으로 참여해온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도 철수했다. 현재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어떤 권리나 의무도 부여된 게 없다. 역사적으로 봐도 중국은 애초 평화체제 논의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 문제는 1970년대부터 오랫동안 ‘북-미 간 양자의 문제’라는 북한과 ‘남·북·미 3자가 논의할 일’이라는 한·미의 주장이 맞서온 영역이다. 중국이 포함된 4자 구도는 1997~1999년의 남·북·미·중 4자회담 이후 나온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라고 종전선언 및 평화체제 논의에 자동적으로 참여를 요청받은 건 아니라는 게 역사적 경험이라는 뜻이다. 중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참여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자국의 안보이익과 연결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집안 일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간섭하겠다는 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반도를 미-중 대결구도에서 바라보는 전형적인 강대국 논리이고 제국주의 논리다. 우리가 이런 논리를 그냥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중국이 참여할지는 우리가 판단해 허용할지 말지의 일이다.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이면 참여를 요청하면 될 일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꼭 참여해야 한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패권논리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세상에 처음부터 당연한 일은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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