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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기자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박점규

등록 2018-05-14 18:21수정 2018-05-14 19:14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2013년 7월14일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 186개 서비스센터 1만명 중 정규직은 1239명. 나머지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다. 월급은 100만원 남짓, 대출로 버티다 여름 성수기에 빚을 갚는 생활이었다. 노조창립대회에 모인 기사들의 얼굴엔 변화를 향한 열망이 가득했다.

석 달 뒤인 10월31일 아산서비스센터 최종범씨가 “배고파서 못 살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홍보담당을 맡았다.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언론은 싸늘했다. 불법파견과 노조와해의 증거들이 쏟아졌지만 <한겨레> 등 일부 언론만 관심을 보였다. 최종범씨 아내가 삼성 경비들에게 패대기쳐질 때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광고를 실어주는 신문사도 없었다. 개혁성향 언론도 삼성 기사가 지면에서 빠지거나 구석으로 찌그러지기 일쑤였다. 삼성 언론대응팀의 위력은 대단했다.

최종범의 딸 첫돌, 아내를 설득해 ‘별이 빛나는 돌잔치’를 열었다. 사진작가들이 돌 사진을 찍었고, 백기완 선생을 비롯해 100명이 넘는 사회인사들이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돌잔치에 온 기자들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언론의 무관심 속에 싸움은 길어졌고, 금속노조는 최종범을 죽음으로 내몬 건당 수수료와 하청사장은 손도 대지 못한 채 합의서를 써야 했다.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노조와해 작전이 시작됐다. 노조원이 많은 서비스센터가 하루아침에 폐업되고, 탄압을 못 견디고 줄줄이 노조 탈퇴서를 썼다. 노조는 반 토막이 났다. 2014년 5월17일 염호석씨가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일제 치하, 군사독재 시절에나 벌어지던 시신탈취 사건 현장에도 언론은 없었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노조와해 그린화 작업.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벌어진 공작의 주범으로 최 전무, 윤 상무 등 4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지난 5년 언론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장 선배님, 보내주신 좋은 와인, 집사람과 같이 마시며 다시 한 번 힘을 내겠습니다!^^”, “언제나 받기만 하니 송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둘이 식사 한번 할 수 있을까요?” “선배님, 천박한 기사는 다루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들은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느라 바빴다.

<한겨레> 창간 30주년이다. 노동자들에게 고마우면서도 서운한 신문. <한겨레>만큼 노동문제를 애정으로 다뤄준 언론이 없지만, 때론 재벌 앞에서 멈칫했다. 2006~2007년 삼성, 포스코, 현대차를 비판하는 의견광고를 거부해 노동계가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재용, 정몽구, 최태원 등 기업주 이름은 신문광고 금기어다. 정몽구 회장, 삼성 백혈병 기사가 온라인에 늦게 올라가기도 했고, 최근 <한겨레21>의 엘지-보수단체 커넥션 기사가 편집권 침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래도 <한겨레>다. 홀로 삼성 광고 없는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이 앞다퉈 삼성 노조와해, 대한항공 갑질을 보도한다. 직장갑질119 출범 6개월, 회사 갑질 폭로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이 재벌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무엇보다 기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장충기 꼬붕’들, ‘언론사 조현민’들의 데스크 갑질에 함량이 충분한 기사로 맞서자.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를 외치면서. “기자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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