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만 교감할 수 있는 종교적 정서가 있다. 수도 서울에서 불과 몇시간 거리의 철조망, 그 철조망이 만드는 패러다임이다. 그 정서는 북한과의 물리적 거리를 실제보다 멀게 만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수많은 금기들을 일깨운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중심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되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통일이다. 한반도는 분단 이후 남과 북을 점령해온 공고한 패러다임의 위기를 겪고 있다. 패러다임은 원래 과학자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총체적 체계를 지칭하지만,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인식체계로 확장될 수도 있다. 남과 북이라는 공고한 두 체제, 그 체제를 설명하고 체제를 고민하고 또 그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했던 패러다임, 그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했다. 통일은 남과 북의 오래된 패러다임을 지탱하는 공동목표였다. 하지만 그 공동목표는 늘 불가능을 전제로 기능했다. 북의 패러다임에서 통일은 이념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물리적 통일로, 남의 패러다임에서 통일은 낭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물리적 불가능성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적어도 두 정상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울과 평양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단순한 물리적 거리로 환원하기 전까지 그랬다. 청와대와 평양은 서울~부산보다 가깝다. 정말이다. 이제 그 명백한 물리적 사실이 우리 사고체계의 벽에 균열을 냈다. 그 균열을 막기 위해선 새로운 체계 혹은 종교가 필요하다. 패러다임의 위기가 오면 과학자 사회는 세 가지 방식으로 대처한다고,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토머스 쿤은 말했다. 첫째,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 정상과학적 해결을 시도하는 경우다. 여전히 일부의 사회 구성원들은 이 방식을 선호한다. 대체로 늙었거나 기존의 사회체제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다. 둘째, 해결하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해당 과학분야 자체가 서서히 붕괴된다. 이상징후가 계속 쌓이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과학은 작동하지 않는다. 셋째,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고 그 패러다임이 혁명을 초래할 수 있다. 쿤은 과학혁명이 세번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혁명은 젊거나 해당 분야의 초심자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고, 추종자들은 합리성보다는 그저 미적 아름다움 혹은 정서적 끌림에 의해 혁명에 동참한다. 즉 패러다임의 전환은 혁명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종교적 개종의 과정을 닮았다. 만약 남과 북을 지배해온 어떤 패러다임이 있다면, 그리고 그 패러다임에 위기가 찾아왔다면, 한반도의 사회 구성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신속하고, 불가역적이며, 종교적 개종처럼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이다. 바로 그런 개종의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패러다임은 규칙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과학자도 학문 전체의 규칙을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를 지배한 패러다임의 균열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이제 한국사는 겨우 기존 패러다임의 위기 시대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누가 어떤 패러다임을 제안할 것이며, 사회는 어떤 패러다임을 선택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통일시대를 만들어갈 패러다임은 아름답고 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아름답고 젊은 청년들을 통일과 연결시키는 패러다임, 그 혁명적 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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