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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청년, 왜 평화에 냉담한가 / 한귀영

등록 2018-06-03 19:30수정 2018-06-04 13:34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6·13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실종되었다고들 한다. 한반도 평화 이슈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70%를, 여당 지지도가 50%를 넘다보니 야당의 단골 이슈인 정부여당 견제론이 낄 틈이 없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 이슈를 살펴보면 미묘한 차이들이 드러난다. 청년들의 상대적 냉담이 그것이다. 판문점 선언 다음날 엠비시-코리아리서치 조사 결과를 보니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인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는 질문에 ‘신뢰 간다’가 전체 평균 77.5%였는데, 20대는 65.3%에 그쳐 전 연령층 중 가장 낮았다. 지난 1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글로벌리서치의 19~59살 대상 조사도 비슷했다. “북한에 대해 압박보다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체 61.8%가 동의한 가운데, 20대가 54.8%로 가장 낮았다. 지난 1월 평창겨울올림픽 직전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의 당시에는 청년세대 상당수가 단일팀을 공정성에 대한 반칙이라며 반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청년세대의 보수성은 새롭지 않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청년세대는 대북 이슈에서 당시 50대와 궤를 같이해왔다. 북의 핵위협과 외환위기 이후 각자도생의 경제체제 속에 성장한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남북 화해와 통일은 당연한 정언명령이 아니다.

청년세대 내에서 남녀 차이가 꽤 크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앞의 조사에서 “북한에 대해 압박보다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20대 여성 64.3%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성은 46.3%만이 동의했다. 청년, 남성이 특권이 아니라 페널티라고 믿는 20대 남성에게 남북 교류와 통일은 북한 청년을 새로운 경쟁자로 맞닥뜨리는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청년의 민족의식 부재를 탓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 나아가 통일을 주도해야 할 세대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이 이들의 삶에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실존적, 정치적 논점을 따져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일제로부터의 독립도 민족적 당위만은 아니었다. 지배자가 일본인에서 같은 민족으로 바뀐다는 사실만으로, 50% 넘는 소작료를 가져가는 지주가 일본인에서 같은 민족으로 바뀐다는 사실만으로 절대다수가 독립을 열망했을까?

독립은 내 삶의 근본적 개선을 가져오는 사건, 압제가 사라지고 제 땅이 생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좌익이 금지되고 김구의 한국독립당마저 불참한, 친일 지주세력 한민당이 여당이던 제헌의회조차 중요 산업 국유화, 노동자 이익균점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했다. 이승만조차 좌익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내세워 농지개혁을 실행해야 했다. 1960년 시점에 한국의 농지분배는 세계에서 가장 평준화되어 있었다. 제 땅이 생긴 농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을 도시로 보냈다. 40여년 고도성장의 근본 동력이다.

지금 한국의 금융 및 부동산 자산 분배의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 수준이다. 통일이 열망의 대상이 되려면 독립이 약속했던 ‘자기 땅’에 대한 희망 정도의 약속은 있어야 한다. 북의 인력과 자원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재벌들의 돈잔치로 귀착될 한반도 비전 앞에서 청년의 가슴은 뛰지 않는다. 공동의 자산을 나눌 비전 없이 청년의 냉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당장은 평화 구축이 우선임은 물론이다. 살아갈 날이 긴 청년세대의 시선이 평화 이후의 미래를 보고 있음도 물론이다. 청년의 지지 없이 먼 길을 가지 못한다. 담대한 희망의 비전을 만들어갈 소임이 정치세력에게 있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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