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9월7일 열린 미스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는 미국 사회에 여성해방운동의 강력한 등장을 알린 장면으로 꼽힌다. 그 전해 창설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뉴욕의 급진여성들’의 주도로 대회가 열리는 애틀랜틱시티에 젊은 여성 400여명이 모였다. 몇몇이 대회장에 들어가 ‘여성해방’ 배너를 펼치고 ‘노 모어 미스아메리카’를 외치는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들이 ‘자유의 쓰레기통’이라고 적힌 통에 강요된 여성성의 상징이자 “여성 고문의 도구”라 주장하며 코르셋, 하이힐, 브래지어, 화장품, 잡지 <플레이보이> 등을 버리는 모습은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오랜 세월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불태웠다’는 이미지로 각인됐는데,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가 올해 초 한 잡지에 기고한 글 등을 보면 이는 오해다. 당시 <뉴욕 포스트>가 실제 시위 전 작성해놓은 기사에 베트남전 반대 시위자들이 징병카드를 불태우던 데 비유해 브래지어를 불태우는 여성들을 암시한 걸 다른 언론들이 받아쓰며 사실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시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캐럴 하니시는 이후 “미스아메리카와 모든 아름다운 여성들을 결과적으로 우리와 같이 고통받는 자매들이 아니라 적으로 몬 것이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위가 여성의 권리와 해방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화와 토론에 불을 붙인 것은 분명하다. 2세대 페미니즘 확산의 모태가 된 여성들의 자율적인 ‘의식고취모임’은 70년대 중반 미국 전역에 1000여개로 불어났다. 이들은 강요된 여성성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및 군산복합체와 군대의 미스 아메리카 이용, 기업들의 소비주의 또한 비판했다.
50년이 흘러 최근 한국 사회에 ‘코르셋’이란 단어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에스엔에스와 여초커뮤니티에 #탈코르셋 인증이라며 쇼트커트를 하거나 화장품을 부순 사진 등이 오르고 있다. 반면 이를 강요하는 데 반발해 ‘역코르셋’이란 말도 나온다. 개개인을 판단하는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과도한 꾸밈노동과 상업주의에 대한 토론과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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