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자체 해결 / 손아람

등록 2018-06-13 21:29수정 2018-06-14 15:25

손아람
작가

법원은 권력이 아니다. 판사의 영향력은 자기 법정에서나 유효하다. 그는 자기 법정에서 피고의 운명을 다룰 때만 전능해 보인다. 진짜 권력은 늘 입법과 행정이 쥔다. 착시효과는 판사가 선출되지 않기에 일어난다. 판사는 피고의 손을 붙잡고 허리를 꺾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등법원 판사였으며 삼권분립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사상가 몽테스키외 역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에 비하면 사법권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입법과 행정은 통치권과 관련되어 있지만, 사법은 개별적 시민권에 관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으로 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권력’인 사법권을 군주가 신하에게 나눠 주거나, 평민들이 나눠 가졌다. 재판의 공정성은 재판관과 재판 당사자의 신분적 지위가 동등한 것으로 담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법기관은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조직인 반면, 사법기관은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의회와 정부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귀족 시늉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이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시민의 통제를 받는다. 직접 총투표로만 의원과 국가수반이 선출되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는 입법자를 시민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걱정할 문제다. 자기 자신 권력이 되지 못하는 입법자에겐 정치적 미래도 없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순환직이었던 재판관의 직위 안정성이 강해지면서 사법부가 귀족적인 조직이 되었다. 몽테스키외가 재판 공정성의 조건으로 삼았던 재판 당사자와의 신분 차가 벌어진데다, 그 힘은 삼권 중 유일하게 시민의 통제력 바깥에 있다. 오직 정부처럼 더 큰 권력이 가진 임명권에 의해서만 사법부는 통제된다. 법원은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부의 눈치를 본다. 그렇게 사법농단이 일어난다. 사법부가 독립성을 지켜낼 권력 견제 환경에 있지 않은 까닭이다.

이것은 사법 ‘행정’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사법권’ 자체가 정부 권력에 무방비적으로 취약한 결함을 가진 게 본질이다. 법원행정처가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되는지는 부수적인 논점이다. 문서화된 행정에서조차 정부에 엎드릴 만큼 사법권력이 나약하다면, 판사 개인이 스스로 독립성을 지켜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듯이, 앞으로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판사 개인이 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약속할 수 있는가? 그 전화를 받은 판사라면 누구나 ‘법관독립위원회’를 찾을 거라고도 약속할 수 있는가? “겨우 승진 임명권 따위를 휘두르면서 숭고한 사법권을 간섭하다니!”라고 분개하면서? 이런 두려운 상상을 누구나 해본다. 그런데 정말로 상상일까?

법원 조직의 재정비를 넘어 권력분립 구조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착한 판사가 제 할 일만 하는 것’은 처방이 될 수 없다. 착한 판사에게는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없다. 법원은 지금보다 막강한 상징권력을 가진 기관이어야 한다. 판사가 되기는 훨씬 더 어려워야 하고, 그들은 정치적 권력의 결핍을 사회적 명예로 보상받아야 한다. 5년 임기 나그네인 대통령에게 속박될 수 없는 종신직 도입도 검토되어야 한다. 대신 이 영예로운 상징권력은 시민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시민은 시민권을 처분할 권한을 가진 판사를 선출하거나, 적어도 탄핵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 ‘자체 해결’하겠다는 대법원장의 의지는 굉장하지만, 법원이 자체 해결할 일이 아니다. 진짜 권력인 ‘입법’이 움직일 때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1.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2.

우리가 모르는 한덕수 [12월26일 뉴스뷰리핑]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3.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한덕수가 꿰맞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3가지 논리 [12월27일 뉴스뷰리핑] 4.

한덕수가 꿰맞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3가지 논리 [12월27일 뉴스뷰리핑]

끝내 국민 뜻 배신하고 탄핵 자초하는 한덕수 대행 [사설] 5.

끝내 국민 뜻 배신하고 탄핵 자초하는 한덕수 대행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