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건강보험은 1년을 단위로 보험료 수입과 보험급여 지출의 균형을 도모한다. 이 점에서 장기보험인 국민연금과 구별된다. 그런데 지금 건강보험은 20조원이 넘는 돈을 쌓아놓고 있다. 건강보험에 과도한 돈을 쌓아두는 것은 폐해를 낳는다. 첫째, 단기보험에서의 과도한 적립금 자체가 국가 재정의 비효율적 운영에 해당한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도 비효율적 자금 운용이 된다. 적자 재정에서 돈을 빼서 과도한 누적 흑자 제도에 자금을 투입한다면 어찌 옳다 하겠는가. 둘째, 국민은 혜택 이상의 보험료를 내는 것으로, 의료 제공자들로서는 받아야 할 대가를 충분히 못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나, 수가 인상에 대한 의사들의 과한 요구를 피하기 힘들어진다. 누적 흑자를 현명하게 줄이는 것은 어렵고, 지혜를 요구한다. 첫째, 부담 능력보다 과도한 보험료를 내던 계층의 부담을 줄여주는 데 써야 한다. 둘째, 필요한 의료 서비스임에도 건강보험에서 제외되었던 것을 보험급여권으로 신속히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보험재정 지출은 건강보험의 존재 의의다. 첫째가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이고, 둘째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다. 7월1일부터는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가 낮아진다.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보험료 부과방식은 오랜 해결 과제였다. 누군가의 보험료를 낮추려면 누군가의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아니면 재정 수입의 감소를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정치인, 관료 모두 선뜻 나서서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더는 ‘폭탄 돌리기’를 할 수 없다는 강한 여론이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을 끌어냈다. 600만 가까운 세대의 보험료를 낮추면 건보재정 수입이 연간 1조원이 줄어든다. 크다면 크지만, 연간 건강보험료 규모 50조원을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다. 건강보험은 의료 이용 시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다. 의료는 건강이나 생명에 관계되는 점에서 선택 사항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필수성’은 저소득층을 경제적 재앙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국가는 의료의 이용을 개개인에게 맡겨놓지 않는다. 국가가 직접 필수의료를 제공하든가, 공적인 건강보험을 통해 금전적 안전망을 마련한다. 영국이 전자에 해당하고 우리나라는 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처럼 낮은 건강보험료를 유지하는 나라는 필수의료를 모두 건강보험의 혜택 대상으로 하기 어렵다. 보험료율을 6% 갓 넘는 수준으로 유지하다 보니 건강보험 보장률은 60% 초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의료 이용 시의 부담이 크다 보니, 저소득층은 가계가 흔들리기도 한다. 서구 국가들이 15%의 보험료로 80%의 보장률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우리의 건강보험이 보장성 확대를 제1의 과제로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건강보험 재정 수입을 줄게 하고, 보장성 강화는 지출을 늘린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20조원의 누적 흑자가 있다. 이는 당분간 보험료율의 급격한 증가 없이 보장성 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적립금의 사용은 의외로 어렵다. 건강보험의 ‘당기 적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관료나 적자는 피하기를 원한다. 언론도 참고 있지 않을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려 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누적 흑자’가 10조원으로 내려갈 때까지는 ‘당기 적자’가 나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몇 년간 건강보험의 적자를 두려워하지 말자. 흑자가 난다면 ‘부과체계의 개선’이나 ‘보장성 강화’나 어느 쪽이든 제대로 못 했다고 평가하자. 적자 소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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