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초상(1790). 칸트는 자신의 저작 <순전한 이성의 한계들 안에서의 종교>가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로 인해 출판에 어려움을 겪은 것을 계기로 대학과 학문의 자율성을 논의하는 <학부들의 논쟁>을 썼다. 출처 위키피디아
대학 문제를 천착해온 고부응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는 이마누엘 칸트의 <학부들의 논쟁>(1787)을 근대 대학의 이상을 보여주는 주요 텍스트로 거론해왔다. 당시 대학 내 학부 체계는 관행적으로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등 세 개의 ‘상위 학부’와 ‘하위 학부’인 철학부로 나뉘어 있었는데, 칸트는 말년의 이 저작에서 하위 학부가 왜 중요한지 역설한다. 인민의 실제 삶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는 상위 학부들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이들을 상위 학부로 대접한다. 칸트는 이 학부들이 정부에 ‘유용성’을 약속하지만, 정부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자신들의 척도로 삼을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반면 하위 학부인 철학부는 오직 “자유롭게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 곧 이성만을 준칙으로 삼는 학부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이성의 입법’ 아래에 있는 하위 학부가 굳이 ‘정부의 입법’ 아래에 있는 대학이란 체계 안에 꼭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의 개입 없이 오직 이성만을 준칙으로 삼는 하위 학부의 비판적 검증이 있어야만 상위 학부들은 진리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이들이 서로의 구실을 인정하면서 벌이는 ‘합법적’ 논쟁이 전체 사회가 이성적인 법과 제도를 운영해나갈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칸트로선 철학이 하위 학부로, 비유하자면 ‘신학의 시녀’로 취급받는 현실이 영 마뜩잖았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런 문장으로 현실을 비튼다. “철학부는 자신의 은혜로운 부인 앞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가 아니면 뒤에서 치맛자락을 들고 있는가?”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에게 횃불을 들게 할지, 치맛자락을 들게 할지는 ‘은혜로운 부인’의 선택에 달렸다는 현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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