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8월5일 새벽, 베르타 벤츠는 쪽지만 남긴 채 두 아들과 독일 만하임의 집을 나섰다. 남편이 깰까 자동차를 한참 밀고 나가 시동을 켰다. 남편 카를 벤츠가 만들어 1886년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은 세 바퀴의 내연기관 자동차 ‘모터바겐’은 당시 그리 세평이 좋지 않았다. 상업적 시판을 주저하는 남편 대신 팔을 걷어붙인 건 아내였다.
엔진이 과열되면 시냇물을 길어 식히고, 연료 파이프가 막히면 모자 핀으로 뚫는 등 그는 크고 작은 수리를 직접 하며 최대 시속 16㎞로 길을 달렸다. 주유소가 있을 리 없던 때라 약국에서 연료를 보충했다. 언덕을 내려온 뒤에는 궁리 끝에 구두수선공을 불러 브레이크 블록에 가죽을 댔다. 지금의 브레이크 라이닝은 그의 발명품인 것이다. 포르츠하임의 친정까지 106㎞, 저녁에 도착한 그는 남편에게 전보로 이 소식을 알렸다.
베르타 벤츠의 세계 첫 장거리 주행은 지금으로 치면 ‘라이브 마케팅’이었다. ‘말이 끌지 않는 탈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렸고, 얼마 뒤 모터바겐 모델 3는 세계에 데뷔했다. 독일에선 2년마다 그의 장거리 주행을 기념하는 클래식카 경주가 열린다. 2008년엔 만하임에서 하이델베르그를 거쳐 포르츠하임에 이르는 190㎞ 코스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선 1919년 11월15일 경성자동차 강습소에 입학했던 23살 최인선이 첫 여성 운전자다. 당시 그의 입소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여자계의 신기록―여자운전수 출현?’이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1913년 일본인이 세운 이 운전학원은 학과 한달, 실습 한달을 마치면 면허증을 내줬는데, 최인선은 여자라는 이유로 한달간 연구과에서 더 특별교육을 받았다. 그래도 그의 도전은 다음달 기혼여성이었던 문수산의 입학으로 이어졌다.
이번주 전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운전대를 잡게 됐다. 베르타 벤츠로부터 130년, 최인선으로부터 99년이 걸렸다. 너무나 늦었지만 이렇게 허들이 하나 더 사라졌다.
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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