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활동가·병역거부자 헌법재판소는 6월28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담긴 병역법 88조 1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병역법 자체에 대해 사실상 위헌과 다를 바 없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01년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였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지시한 대로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도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양심의 자유라는 개인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큰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변화는 개인의 권리 보장에 그치지 않는다.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분단과 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린 군사주의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군사주의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여성, 장애인, 이주민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이들로 이등 국민 취급을 받았다. 병역거부권 인정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군대에 다녀온 유무로 결정되는 시대,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신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복무제도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유추해보자면 민간 공공 영역의 일, 특히 취약계층을 돌보는 복지 분야의 일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폭넓은 대체복무제를 운영했던 독일 사회는 대체복무제를 통해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돌봄노동은 흔히 여성의 일로만 치부되며 중요하지 않은 비가시적인 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대체복무자 남성들이 돌봄노동을 담당함으로써 돌봄노동에서 성별 업무 구분이 무너졌고, 사회 전체가 돌봄노동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다. 대체복무제 도입이 가져올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안보 개념의 변화다. 기존의 군사안보 이데올로기에서는 강한 군사력이 국민을 지키는 바탕이었다. 하지만 국방의 의미가 외국 군대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에서 국민의 안전과 평온을 지키는 일로 점차 넓어지고 있는 요즘, 대체복무는 안보의 개념을 확장하고 국가의 역할을 다시 규정한다. 최근 들어 높아진 안전에 대한 요구 등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보의 새로운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병역거부권 인정은 현재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군축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남과 북이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현재의 방대한 군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수준으로 군대의 규모와 무기 체계를 줄이고 그만큼의 인력과 재원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안보 불안감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안보 공백을 우려하지만 군사안보의 축소가 오히려 새로운 안보 정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병역거부 인정, 대체복무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나 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려를 과거에 머무는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논의는 대체복무제를 할지 말지가 아니라, 어떤 대체복무제를 어떻게 준비해서 실행할지다. 우리가 잘 준비한다면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한국 사회의 탈군사주의, 탈분단, 민주주의와 인권의 증진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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