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촛불은 아직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남과 북과 미국이 총을 거두고 평화를 모색하는 협상장에서, 미투 운동과 대한항공 사태처럼 모든 을들이 모든 갑질에 저항하는 자리에서,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공장에서건 평등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현장에서 촛불은 혁명을 향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촛불은 다른 장에서는 항쟁에서 멈춘 채 시나브로 사위어가고 있다. 주권자로서 각성하여 촛불을 들어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지 못한 채 권력을 정권에 위임하였고, 이 정권은 적폐청산이 시대의 과제임에도 재벌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에 너무나 미온적이다. 심지어 “지지율 70%와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려져 있지만, 집권 1년 만에 촛불정권에서 보수여당으로 전락하였다”라는 평가가 최소한 진보 진영에서는 자자하다. 청와대의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불가 입장 표명도 이의 일환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 양승태 체제의 사법농단이 만나서 이루어진 대표적 적폐다. 박 대통령은 고용노동부를 통해 해고된 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는 단체를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직권명령을 내렸다. 개인적으로도 전교조를 무척 혐오하였고 부패한 정권을 종북 프레임에 의존해 유지하려는 술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전교조는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했고, 전임자들은 해임당했다. 참교육도 거기서 멈추었다.
촛불정권이 들어서자 모두가 사필귀정이 될 줄 알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를 공문으로 취소하는 문제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에 청와대 대변인은 대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하거나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불가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는 객관적 사실에도 어긋난다.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다.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 정권이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행정 조치를 취한 사례는 이미 두 차례나 있었다.
이 법외노조 통보 자체가 위헌이자 민주국가의 상식을 부정한다. 박근혜 정권이 적용한 노조법 시행령 9조2항 자체가 당시까지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이 사문화한 것이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한하고, 대중의 상식으로도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구성원의 연대를 전제로 만들어진 조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해직된 9명을 조합원으로 품었다는 이유로 6만명 노조의 법적 지위를 통째로 박탈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교통신호 위반자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유사하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해직교사의 조합원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교원노조법 자체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개정을 권고하였다. 대법원도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결자해지, 곧 정부가 이 행정명령을 직권 취소하면 소송 절차도 종료되고 모든 문제는 풀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17곳 가운데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그중 10명이 전교조 교사 출신이다. 수십조원을 들여서 외려 창의력과 인성을 마비시키고 경쟁과 폭력과 자살 충동을 조장하는 교실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우애를 돈독히 하며 더불어 진리를 탐구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권력은 속성(體)이 없다. 그저 작동(用)할 뿐이며 그 작동 방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포섭과 배제’다. 이 정권이 사학재벌, 학원재벌 등 기득권은 물론 저항성이 거세된 시민/교육단체를 포섭하는 대신 전교조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배제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즉각 법외노조를 철회하는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그것이 이 정부가 촛불정권으로 다시 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