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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2018 여당 대표의 조건 / 김태규

등록 2018-07-03 18:13수정 2018-07-04 12:36

김태규
정치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을 14년 전에 처음 만났다. 여소야대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2004년 3월12일로부터 며칠 뒤였다. 당시 법조팀에서 근무했던 난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온 ‘문재인 전 민정수석’과 마주쳤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준비 상황을 물었더니 그는 의례적인 답을 내놓았다.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명함을 주고 돌아섰는데 그가 다시 나를 불러 세우더니 ‘세상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한겨레> 기자님이 우리 집을 찾아오신 것 같은데 기자를 대해본 적이 없는 아내가 당황해서 거짓말을 한 것 같아요. 그 기자님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사정은 이랬다. 전날 오후 ‘문재인 변호사’가 탄핵소추 변호인단 간사로 내정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데스크는 취재를 지시했다. 문 변호사가 사는 집 주소가 전달됐고 법조팀 막내 기자는 그날 저녁에 그가 산다는 서울 평창동 연립주택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눌러 “문 변호사 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초인종 너머 여성은 “그런 사람 여기 안 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막내 기자가 일단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문 변호사가 나타나 ‘거주’를 확인했다고 한다. 막내 기자는 다행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퇴근할 수 있었다. 문 변호사는 집으로 들어가 김정숙 여사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아내의 거짓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취임 뒤 1년 넘게 이어지는 고공 지지율은 그의 진솔함에 국민이 호응한 결과다. 자유한국당 심판론과 문 대통령 지지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은 6·13 지방선거·재보선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의 여소야대 지형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 개인기만으로 개혁입법을 완성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그래도 여건은 나아졌다. ‘레드 준표’는 이제 여의도에 없다. 탑골공원에서 ‘서울 수복’을 외치던 ‘정치인 안철수’도 당분간 재기 불능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뒤늦게나마 혁신을 다짐하고 바른미래당도 새 지도부 구성을 앞두고 있다. 이제 여당도 품이 넉넉한 대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집권 중반기를 책임져야 하는 새 여당 대표는 ‘눈 맞추고 경청하며 공감하는 자세가 몸에 밴’ 문 대통령 같은 사람이면 알맞겠다. 최저임금 받는 식당 종업원들에게 갑질하면서 민생을 논하는 가식은 금세 탄로 나기 쉽다. 고압적이고 오만한 성격은 안 된다.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독선적 태도로는 선의의 비판도 악의적 비방으로 오해하기 쉽고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대통령과의 친분만 내세우는 것도 곤란하다. ‘플러스 알파’가 없는 그림자 같은 사람은 대표가 아니라 참모에 더 적합하다.

민주당의 새 대표는 문 대통령의 약점도 보완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착하고 바른 사람은 유연성이 부족하고 고지식한 경우가 많다. 새 여당 대표는 야당을 달래고 어르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 눈치만 보는 ‘예스맨’이어서도 안 된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대통령을 설득해내는 용기와 강단도 필요하다.

곧 민주당 당권 주자들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질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장점은 쏙 빼닮고 그의 단점까지 보완할 수 있는 후보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누가 ‘이상형’에 더 가까운지 ‘민주당 사람들’은 8월25일까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민주당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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