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맨 왼쪽 안상수 비대위 준비위원장.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영국에서 보수주의의 중심 논지는 1790년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을 통해 대부분 확립했다.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자코뱅이 목표로 한 사회 전체의 개조, 개인 의식의 개조, 기독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종교 등을 비판했다. 버크가 남긴 유명한 말은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2010년 <보수의 유언>에서 버크의 이 말을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으로 풀었다. 에도시대 시인이 쓴 이 말은 ‘변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발전과 전개를 해서 갱신한다’는 뜻이다. 나카소네는 이를 보수의 본류라고 했다. 그는 2009년 자민당이 정권을 내준 뒤 당명 개정 움직임이 있자 “선거에서 한번 대패한 정도로 당 이름을 바꾸려는 나약한 근성은 잘못”이라고 일갈했다.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버크는 홉스 등의 자연법에 반발해 가부장제 가족, 지역 공동체, 교회 등을 강조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국가의 적선이 아니라 재산에 근거한 인간 결사체의 유대와 이를 고리로 한 자선과 상호부조를 들었다. 미국 헌법은 권력 분립, 견제와 균형, 중앙정부의 권한 제한 등 보수주의 원칙을 가득 담았다.
한국의 보수가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때만 되면 당명부터 바꾸기 바쁜 우리 현실에선 애초부터 지켜야 할 원칙이나 가치가 있기나 했던 걸까?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중증 외상 전문의인 이국종 교수를 검토했다는 소식은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혁신 코스프레’ 하기 바쁜 한국 보수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여지껏 한국 보수가 지켜왔던 가치라면 약육강식의 천민자본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 정도다. 한국 보수에게 지금 필요한 건 혁신 조급증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나 원칙을 재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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