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부문장 겸 에디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스웨덴 한 국책연구소 보고서 제목에 눈길이 간 이유는 난민 문제를 다룬 내용이어서였다. 인구 1천만명의 스웨덴에 2015년 무려 16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몰려왔다. 비상이 걸렸지만 이들을 막을 방법도, 쫓아낼 수단도 없었다. 난민이 국경 안에 발을 딛는 순간 정부는 잠자리와 하루 1만원의 난민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오래지 않아 숙소부터 바닥이 났다. 궁여지책으로 대형 크루즈선을 빌려 난민들을 머물게 했다. 그들은 난민 허가를 기다리며 그곳에서 8~9개월을 머물러야 했다. 처음엔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난민에 피로도는 커졌다. 앞서 정착한 아랍계 이민자들이 저지른 강력범죄, 종교갈등까지 새삼 부각됐다. 그러잖아도 줄어드는 연금에 불만이 쌓여왔던 노인들은 ‘세금을 왜 엉뚱한 데 쓰느냐’며 반발했다.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저녁 외출이 두렵다고 말하는 여성이 늘었다. 실제 난민 범죄는 1%도 안 된다는 통계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에 순응하는 스웨덴인들은 난폭 운전자를 볼 때면 난민으로 치부했다. 일종의 혐오였다. 그새 난민에 대한 우호적 여론은 곤두박질쳤다. 극우 인종주의 정당은 반난민 정서를 자양분 삼아 덩치를 키우며 집권당을 위협했다. 개방과 관용을 내세우던 사민당은 결국 국경을 막고 난민의 추가 유입을 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은 이런 곤궁한 처지를 빗댄 것이다. 스웨덴은 100여년에 걸쳐 전쟁 난민과 정치적 망명자를 받아들였다. 이미 국민의 16%가 외국 출신이다. 하물며 제주에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인으로 갓 난민 문제가 공론화된 우리는 훨씬 거친 앞길이 예고돼 있다. 난민정책을 주관하는 법무부의 전직 장관조차 “난민이 우리 딸들을 빼앗아 간다”고 말할 정도다. 근거 없는 두려움과 편견은 점차 줄겠지만 “내 세금을 축내고, 안전을 위협하고, 일자리를 뺏는다”는 실존적 거부감은 쉬이 극복되지 않는다. 난민 옹호를 ‘감성팔이’라 매도하는 이들한테는 특히 그럴 것이다. 앞서 언급한 스웨덴 보고서의 “솟아날 구멍”은 이런 문제에 대한 대국민 설득 논리다. 정부가 직접 나서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으로, 요컨대 난민 수용에 따른 손익계산서이기도 하다. 이를 우리에게 치환하면 이렇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극심한 저출산과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를 상쇄할 노동력이 필요하고, 모두가 기피하는 저임금 일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중국 동포,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대체해왔다. 그들이 어선, 식당, 건설현장, 가구공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비싼 음식·아파트·침대 값을 치렀을 것이다. 여기서 비롯된 물가인상 억제 효과는 국민 모두의 혜택으로 돌아갔다. 또 그들이 내는 세금과 소비는 복지·연금 재정을 충당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난민이 우리 말을 배우게 하고, 머물 집을 짓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투자는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 난민을 무작정 배척할 수 없다면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의 역할과 지속가능한 수용 규모를 검토하고 사회적 통합에 더 힘을 쏟는 ‘상인의 현실감각’을 발휘해보자는 얘기다. 극도의 난민 혐오와 비방이 넘쳐나는 온라인 댓글만 보면 이런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 보인다. 국민의 70% 이상이 제주 예멘 난민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소한 수용할 수 있다’(62%)거나 ‘가능한 한 많은 수를 수용해야 한다’(11%)고 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은 20%에 그쳤다.(한국갤럽 13일 공표 여론조사) miso@hani.co.kr
이슈우리 안의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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