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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분홍색과 양산 / 김영희

등록 2018-07-23 17:43수정 2018-07-23 19:17

‘남자아이는 파랑, 여자아이는 분홍.’ 요즘 세상에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 싶겠지만,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이 작은 논란이 된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들 시하가 분홍색 치마한복을 골라 입고 공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방영된 뒤, 아빠인 배우 봉태규가 에스엔에스에 아이의 취향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올리자, ‘아들은 아들답게’ ‘아이의 성정체성을 바로잡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 같은 우려들이 나왔다.

100여년 전만 해도 분홍은 남성의 색에 가까웠다. 1897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아기의 첫번째 옷’ 기사는 “분홍은 대개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은 여자아이의 색으로 간주되지만 어머니들은 그 문제에서 자신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고 적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잡지는 “분홍은 좀 더 분명하고 강해 보이는 색으로 남자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지만 파랑은 좀 더 섬세하고 얌전해 보여 여자아이한테 더 잘 어울린다”고 전했다.(<컬러인문학>) 그보다 앞서 19세기 전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 초상화를 보면, 첫째 왕자는 빨간 옷을, 둘째 왕자는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나의 첫 젠더수업>) 빨간색 계열의 분홍이 ‘여성의 색’이 된 건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복이 빨간색에서 초록, 파랑 계열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1950~60년대 화장품·옷 등의 마케팅을 통해 ‘분홍이 여성스럽다’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전달됐다.

물론 남성성과 여성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홍-파랑처럼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불리는 것 대부분이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고 학습된 것이라면, 불편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이 폭염에 양산을 쓸 엄두도 못 내는 남성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중요한 건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이라 말하는 봉태규와 시하를 응원한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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