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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나진에서 초국경 소다자 협력 가능성을 보다 / 안병민

등록 2018-07-23 18:08수정 2018-07-23 19:12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나진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나진-하산 현장방문 일정이었다. 남북한 간 직항로를 이용했다면 청진 어랑공항을 경유하여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러시아를 경유해서 14시간 만에 도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언한 ‘불편, 불비, 민망’의 북한 교통을 체험하기에도 충분했다.

러시아 철도공사가 제공한 특별열차는 1량의 여객차를 연결한 채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열차가 북-러 국경 하산역에 도착한 것은 6시간 후였다. 318㎞ 거리를 약 시속 50㎞의 속도로 달린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상징되는 철도 강국 러시아에 시속 50㎞ 철도 구간이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도리어 이런 환경이 우리에게 새로운 진출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정적만이 감도는 러시아 국경 역에서의 출입국 심사, 통관, 검역 절차는 30분 만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북-중 간 신의주-단둥역 구간에서 출입국 절차를 위해 약 4시간이나 정차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하산역을 출발하자 북한-러시아-중국 국경인 방천 지역이 나타났고, 주위 경치에 넋을 놓고 보는 사이에 북한 국경 역인 두만강역에 도착했다.

두만강역에서 빠른 국경통과 절차를 마친 일행은 자동차를 이용해 나진으로 이동했다. 나진으로 가는 도로는 추억 속의 신작로를 떠오르게 하였다. 적당한 덜컹거림과 창틈으로 스며드는 먼지들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잘 정돈된 농경지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나선시에 진입해서야 포장도로가 시작되었고, 그림으로만 보았던 거대한 승리화학공장이 길가에 나타났다.

나선시의 모습은 국경 부근과는 달랐다. 믿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선봉화력발전소가 정상 가동되면서 도시 내 전력난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길가 상점에는 네온사인이 번쩍거렸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반미’ ‘핵’ 관련 구호도 자취를 감추었다. 손님을 태우고 바쁘게 달리는 택시와 광장 언저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대여섯대의 택시 무리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동안 유류공급 제한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야 했던 주유소도 평온해 보였으며, 차량을 이용하여 중국에서 온 관광객도 꽤 눈에 띄었다. 북한 측 설명으로는 약 3천명의 외국인이 나선시에 체류하고 있으며, 연간 3만여명의 중국 관광객이 나선시를 방문한다고 한다. 장마당에서는 수백명의 인파가 뒤엉켜 있었으며, 은행을 출입하는 고객의 이동도 빈번했다. 필자도 길거리 매대에서 담배와 식료품을 구입해보았다. 달러를 내니 거스름돈으로 위안화가 돌아왔는데, 구매한 상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진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서는 신북방정책의 전략과 중점과제를 발표하였는데, 중점 추진과제 중 하나가 ‘초국경 소다자 협력’이었다. 초국경 소다자 협력사업 활성화로 역내 국가 간 경제협력을 촉진하여 협력이 평화를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킨다는 것이다. 그 주요 대상 지역이 바로 나진이며, 대상 사업 중 하나가 나진-하산 물류사업이다.

나진-하산 사업은 러시아의 화물, 특히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경유하여 반입하는 단순한 사업이다. 참여 폭의 확대와 취급 화물 다변화가 향후 과제로 꾸준히 제시돼왔다. 나진항 방문을 통해 철도, 항만, 전력 등 시설 측면은 합격점 이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적 물류 경영에 미숙한 북한과 러시아 합영기업의 경영 기법은 개선의 여지가 많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물류강국 한국의 동참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비핵화 진전과 제재 해제라는 난제 속에서 초국경 소다자 협력의 가능성을 보았다. 폭염 속에서도 그 확신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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