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한국 학계는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도전을 받지 않고 안일하게 명을 이어온 집단이다. <뉴스타파>의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은 학계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이비 학술단체 ‘와셋’(WASET)은 사이젠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논문을 아무런 심사 없이 승인했고, 즉각 게재료를 요구했다. 논문 내용은 필요 없으니 돈만 내놓으라는 뜻이다. 학문의 내용과 돈, 바로 여기 가짜 학회 사태의 본질이 있다.
학술 활동은 원래 시장과 격리되어 있었다. 대학을 상아탑이라 하는 이유도 학술 활동이 순수한 지적 호기심의 추구라는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잠식한 20세기에 이런 순진무구한 발상은 깨졌다. 학문이 조직화되고 학자 수가 늘어나면서 ‘학술 시장’이 형성된다. 학술 시장은 크게 인력, 자본, 평가제도 등의 요소로 구성되는데, 가장 중요한 ‘인력’은 모두 대학이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인력만으로 학문이 수행될 수 없다. ‘자본’, 즉 연구비가 필요하다. 원래 귀족이 취미 삼아 자기 돈으로 하거나 독지가의 자선으로 수행되던 학술 활동은 이제 국가와 기업이 지원한다.
연구성과는 논문으로 발표된다. 논문이 발표되는 잡지를 학술지라고 한다. 원래 학술지란 동인지의 성격으로, 학회 회원들끼리 연구를 공유하는 용도였다. 하지만 연구자가 급격하게 늘고, 이에 따른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논문으로 연구자를 평가해야 했고, 이때부터 전문 학술지를 출판하는 출판사와, 각 학술지의 영향지수를 평가하는 지표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은 “출판하거나 죽거나”다. 학술 시장에서 논문의 출판과 그 평가지표는 연구자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 셈이다. 하지만 바로 이처럼 중요한 ‘평가제도’의 관리자, 학술지 시장은 엘스비어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에 독점되었다. 이들 대기업 학술지는 논문의 내용보다 학술지의 순위를 통해 연구자를 평가하는 왜곡된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이를 대학의 연구자 평가, 정부의 연구비 수주에 반영하게 만들어 정부와 대학, 학술지 기업이라는 삼각동맹을 결성했다.
이 삼각동맹에서 학술지 시장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바로 2012년부터 가속화된 오픈액세스 운동이고, 이 운동은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비용 지불 없이 학술지 논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논문을 지향했다. 오픈액세스 운동이 학계의 지지를 받아 과학의 공공도서관(PLoS) 등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2012년을 기점으로, 이번에 논란이 된 가짜 학술지들도 함께 기생하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것이다.
대기업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된 소비자 운동이 다단계 기업을 양산했다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뉴스타파>의 보도는 이미 오래된 학술 시장의 부패 원인 중 한 축인 학술지 시장의 부패, 그것도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가짜 학술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삼각동맹의 가장 막강한 권력인 정부와, 인력을 관리하는 대학이 연구비 집행에 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짜 학술지를 모두 퇴출시키면 한국의 학술 ‘시장’이 살아날까.
황우석은 가짜 학술지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내기 어렵다는 학술지에 가짜 논문을 실었다. 다단계 기업을 청소하면 대기업이 활개를 칠 것이다. 학술 활동이 시장논리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구조적 모순은 그대로 남고, 학문은 그렇게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