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탐사매체 <뉴스타파>의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보도(newstapa.org/43812)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간추리자면,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이란 국제 학술단체를 취재해보니 엉터리로 만든 논문을 학술지에 실어주고 학술대회 발표도 시켜주는 등 ‘가짜’ 단체나 다름없더라는 보도다. 그런데 와셋의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이용’하는 한국인 학자는 2014년부터 급증했고 그 규모가 해마다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제 학술계는 10여년 전부터 와셋 같은 ‘약탈적 학술출판’(predatory publisher)에 대해 꾸준히 경고를 해왔다. 이들은 비싼 구독료 없이 대중이 쉽고 투명하게 연구성과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자는 ‘공개 접근’(open access) 운동을 악용해, 논문을 게재해준답시고 학자들을 낚아 그들로부터 게재료를 뜯어내는 행태를 보인다. 2010년 미국 콜로라도대의 제프리 비올은 이런 저널들의 명단을 작성해 공개하고 이를 꾸준히 보완해왔다. 와셋이라는 이름은 비올이 작성한 명단(beallslist.weebly.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약탈적’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애초 이런 저널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윤만을 밝히는 엉터리 저널이 어리숙한 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런 저널을 피하라’는 경고가 무색하게, 이런 저널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학자들이 되레 급증하고 있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잘 보여줬듯, 일자리와 승진, 연구비를 위해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연구실적을 꾸준히 제출해야 하는 압박 아래에서 학자들이 스스로 ‘약탈적 학술출판’의 공범이 되어버린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범이 된 이들은 인류 공동체로부터 학문 자체를 약탈하고 있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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