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경북 구미에 사는 박성철씨는 9년 동안 디스플레이용 유리 제조 회사에서 일했다. 365일 주중 3교대, 주말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했다. 20분 주어진 점심시간에는 식은 도시락을 컵라면 국물과 함께 밀어 넣었다. 작업 실수를 하거나 사내 생활수칙을 어기면 붉은색 ‘징벌조끼’를 입어야 했다. 해마다 최저임금을 받았으니, 9년 차에도 어제 입사한 후배와 급여가 같았다. 2015년 5월, 박씨와 같은 이 회사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회사가 있는 구미공단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다. 노조의 요구는 단출했다. 사람이 입을 만한 작업복과 먹을 만한 도시락을 달라는 것, 그리고 시급 인상. 노조설립 한달쯤 되던 날, 조합원 178명은 문자 한통으로 모두 해고됐다. 사유는 ‘도급계약 해지’. 그들이 일하던 회사와 그들이 속한 하청업체가 도급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니던 회사는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라는 외국인 투자 기업이다. 2005년 설립 당시 경북 구미4공단에 50년간 12만평에 달하는 토지 무상임대, 5년간 국세 전액 감면, 15년간 지방세 감면의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 회사가 연평균 매출 1조원을 기록하는 동안 뜨거운 작업장에서 유리 세정과 절단 등 후공정을 도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여는 딱 최저임금 인상분만큼 올랐다. 극심한 노동강도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다 못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쫓겼다. 문자 통보 다음날 출근길부터 용역회사 직원들이 정문을 막아섰다. 이날부터 이들은 부당해고에 맞섰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다. 고용노동청은 지난해 11월 불법파견을 인정해 해고자 178명의 직접고용을 지시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했다. 고발 2년 만의 결정이다. 그러나 검찰은 불법파견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하청업체 지티에스라는 회사에는 입사원서를 작성할 때 딱 한번 들렀을 뿐이다. 9년 내내 아사히글라스로 출근해 일했다. 그런데 검찰은 아사히글라스가 이들의 채용이나 업무 재배치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단다. 노조는 항고했다. 최근 재수사 결정이 내려져 검찰이 처음부터 사건을 다시 보고 있다. 낮 기온이 37도를 오르내린 지난 26일 박씨는 아사히글라스 정문 앞 천막 아래 앉아 있었다. 낡은 선풍기 한대가 있지만, 더운 바람만 돌고 돈다. 길바닥에서 버티는 네번째 여름이다. 그동안 아내가 중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을 건사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아내는 퇴근 후 한의원에서 또 일을 한다. 생계 때문에 동료들이 떠나는 동안 그가 마지막 23명의 한 사람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지지 덕분이다. 하지만 그를 버티게 하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박씨의 얘기다. “온갖 특혜를 받은 외국인 투자 기업이 우리 노동자들을 최저임금만 주고 부리다 내다 버리며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데, 정부도 법원도 검찰도 전부 회사 편만 들었다. 불법파견이라는 거 뻔히 알면서, 노동자들보고 막무가내로 참고 살란다.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지금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에게 ‘뭐 하러 노조를 해서 저 고생을 하냐, 어차피 우리는 안 된다’는 패배감만 안긴다. 꼭 내 일터로 다시 돌아가 일해야 한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의 복직과 삼성을 상대로 싸워온 반올림의 반가운 소식에 요즘 이들의 마음은 반반이다. 검찰의 재수사로 서울에서 시작된 승리의 기운이 구미까지 전해질 것 같은 기대로 부풀었다가도 이젠 정말 마지막 희망인가 싶어 초조해하고 있다. 늦었지만, 공정한 수사만 이뤄진다면 복직의 길이 열릴 것으로 믿는다. 전국 곳곳의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도 함께 돌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리 곁을 떠난 노동자의 벗을 추모하며 그의 촌철살인 어록을 흉내 내본다. “불판은 갈았는데, 앞장선 노동자들은 언제 그 불판에 같이 둘러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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