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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김정숙, 리설주, 펑리위안 여사께 / 신영전

등록 2018-08-06 18:16수정 2018-08-06 19:12

신영전
한양의대 교수·예방의학

북반구를 강타하고 있는 폭염 속에도 안녕하신지요? 저는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의사이자 교수입니다. 오늘은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편지를 씁니다.

용건부터 이야기하자면, 세 분이 ‘아시아 어린이 기금’(ACEF: Asia Children’s Fund·가칭)의 설치와 운영에 앞장서달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기금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도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남북교류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강영식 사무총장이 ‘한반도 어린이 기금’을 제안하는 자리에 자문차 참석했다가 저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시아 어린이 기금’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정숙, 리설주, 펑리위안 여사님.

한반도 남쪽에서는 ‘어린이가 나라의 보배’라고 하고 북쪽에서도 ‘보물’이라고 합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아시다시피, 전세계 14살 이하 어린이의 약 60%에 달하는 12억명의 어린이가 아시아에 삽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 어린이가 하루 한끼를 걱정하고, 기본적인 예방접종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출간된 유엔 아동기금의 조사 결과와 ‘세계기아지수 2017’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 170만명이 치명적인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고, 생후 6~23개월 어린이 중 최소 필요식을 섭취하는 비율이 26.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살 미만 발육 부진 아동 비율은 27.9%로 3명 중 1명이며, 량강도 지역에선 무려 31%에 달합니다. 2500g 미만인 저체중아로 태어나는 경우도 무려 5.7%나 됩니다. 시골 지역은 90%가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5살 미만 어린이 10명 중 1명이 심각한 설사 증세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5살 미만 어린이 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20명으로 남한의 5.8배, 중국의 2배에 달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어른들은 핵이니 경제제재니 하면서 좀처럼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엔의 경제제재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금지하지 못하게 명시하고 있지만,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 모집, 물품 구매, 선적, 배달이 거의 막혀 있는 형국입니다. 대북 제재의 명분이 평화, 인권, 인도주의인데 그런 경제제재가 오히려 북한 어린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다간 1990년대 말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대기근 참사가 재현될까 걱정입니다. 당시 추정 사망자 30만명 중 대다수가 어린이였습니다. 이런 실패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김정숙, 리설주, 펑리위안 여사님.

지금 이 시간에도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시아 어린이 기금’은 북한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인의 따뜻한 연대를 통해 모든 어린이가 국적에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에 사용돼야 합니다. 하지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대치 속 한반도에서 아무 잘못 없이 굶주리고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세 분이라도 먼저 나서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러한 세 나라의 연대는 단순히 어린이들의 행복뿐만 아니라 황폐한 어른들의 전쟁놀이도 멈추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부디 세 분이 앞장서서 이 시간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희망이 되어주시길, 그리고 평화의 마중물이 되어주시길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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