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2017년 12월14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유탸오(꽈배기)와 더우장(두유) 등의 현지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스마트폰으로 밥값 계산이 끝나자 문 대통령은 “이걸로 다 결제가 되는 것이냐”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2018년 6월27일. 문 대통령 주재로 예정돼 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회의 시작 직전 연기됐다. “답답하다.” 문 대통령은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날 집중 논의할 안건 중 하나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개혁안이었다. 2018년 7월5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핀테크 관련 은산분리 완화”를 규제개혁 과제 중 하나로 꼽으며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7월 초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당 내부에 ‘집권야당’ 의원들이 있다. 이들 뒤에 시민단체가 있다”고 했다. 여권 안팎에서는 인터넷은행 규제 완화를 위해 여당 의원 3명(이학영·박용진·제윤경)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뺀다는 얘기가 돌았다. 금융위원회 정책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3인방이 ‘집권야당 의원’으로 유력하게 꼽혔다. 이들 중 박용진 의원은 정무위를 나와 교육위원회로 옮겼다. 제윤경 의원은 금융 법안을 심사하는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 잔류를 희망했지만 비금융 법안을 심사하는 2소위에 배정됐다. 이학영 정무위 간사 후임에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을 발의한 정재호 의원이 선임됐다. 2018년 8월7일. 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말 중국을 방문했을 때 거리의 작은 가게까지 확산된 모바일 결제, 핀테크 산업을 보고 아주 놀랐다”고도 했다. 이날 행사를 보고 나도 놀랐다. ‘국빈방문 중 혼밥 홀대’ 논란을 겪으면서 베이징 서민식당에서 간편결제를 경험한 대통령의 행사가 결국 인터넷은행 규제 완화를 위한 ‘오래된 기획’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핀테크(간편결제) 산업 발전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육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간편결제와 인터넷은행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건지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비대면 영업이 기본인 인터넷은행이 의미 있는 수치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사정으로 문 대통령이 깃발을 든 규제 완화에 여당 의원들은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 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라는 대선 공약을 파기하며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추진하기에는 너무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문 대통령 현장방문 다음날 여야 원내대표들은 8월 안에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여러 쟁점이 부딪치고 있다. 민주당은 산업자본의 지분 비율을 34%로 제시했지만 자유한국당은 50%를 부르고 대기업 진출도 허용하자고 하면서 정무위 법안심사는 소득 없이 끝났다. 여야 담판이 없는 한 30일 본회의 처리는 어렵다. 차라리 다행이다. 실익 없는 인터넷은행 규제 완화는 이쯤에서 접자. 잘못 든 깃발을 내리는 건 흉이 아니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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