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돌아가는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얼음판매점이 열었던 ‘세븐일레븐’이 효시다. 하지만 포스(POS) 시스템 보급 등으로 사실상 지금의 영업 형태를 만든 건 일본이다. 9일까지 37명이 숨진 홋카이도 강진에서 편의점의 초기대응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세븐일레븐, 로손 같은 대형 업체가 아니라 한 지역 편의점이다.
<후지뉴스네트워크> 등에 따르면 도내 모든 화력발전소가 멈춰 295만세대가 정전되는 등 마비가 되다시피한 홋카이도에서 ‘세이코마트’는 6일 지진 당일엔 1100개 점포 중 1050곳, 다음날엔 1093곳이 문을 열었다.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던 피해자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비결은 자동차 배터리 전력을 끌어다 쓴 것이다. 직원 차량의 시가잭에 코드를 꽂아 계산대를 가동시켰다. 세이코마트는 평소 모든 점포에 정전에 대비해 긴 코드 등 비상용 키트와 매뉴얼을 마련해놨다고 한다. 전력이 필요 없는 휴대용 바코드인식기도 갖춰놨다. 에스엔에스엔 이 모습을 찍은 일반인들의 인증샷(사진)과 함께 “홋카이도의 자랑”“신의 대응”이란 칭찬이 이어졌다.
세븐일레븐 등 3대 편의점이 90% 이상 시장을 차지하는 일본에서 세이코마트는 이례적 존재다. 삿포로에서 1971년 창업한 이 편의점은 2010년 이후엔 단 한번만 빼고 편의점 전체 소비자만족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홋카이도에선 세븐일레븐을 제치고 점유율에서도 1위로 올라섰다. 다수의 홋카이도산 재료 제품 판매 등 지역경제와 상생하는 기업정신, 무조건 24시간 영업을 고집 않고 점포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경영방침, 즉석에서 덮밥을 만드는 ‘핫 셰프’ 코너 등이 성공을 일궜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일본 국토의 4분의 1이면서 인구는 4%밖에 안 되는 홋카이도에서 세이코마트는 일종의 ‘모세혈관’ 구실을 한다. 큰 슈퍼가 폐점한 인구가 적은 지역의 지자체는 비용을 분담해 세이코마트를 유치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지만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 역시 사람의 힘일 것이다. 거기엔 정부뿐 아니라 민간의 역할도 소중하다. 지역밀착형 강소기업의 ‘유비무환’이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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