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며칠 전 유럽 연구재단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한 모든 출판물은 개방형 학술지를 통해 출판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앞으로 유럽연합의 연구비로 수행된 논문은 <네이처>, <사이언스> 등의 폐쇄형 학술지에 실릴 수 없다. 애플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자랑하던 그 학술지 기업들은 이 결정을 비난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국민 세금으로 수행된 연구 결과가 사기업을 통해 제공된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과학자의 지식재산권 보호.
지난주 유전체 편집 도구 ‘크리스퍼/카스9’을 둘러싼 지루한 특허분쟁에서 결국 브로드연구소가 승리했다. 크리스퍼가 분명 인간 질병 치료에 혁명적인 기술이긴 하지만, 브로드연구소와 버클리대학 사이에 벌어진 이 진흙탕 공방이 과학계에 미친 영향은 미지수다. 분명한 건, 과학자가 연구로부터 파생될 이익을 지키려는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정착했다는 점이다.
미술작품 하나가 수십억에 거래되고, 작곡가들이 음원을 통해 큰돈을 버는 시대에 과학자가 연구결과에 특허를 내고 부자가 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문제는 귀족 과학자가 연구하던 17세기와는 달리, 현대의 과학연구에는 큰돈이 필요하고 이를 대부분 정부가 지원한다는 데 있다.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바로 여기서 과학 연구의 공공성 대 상업성의 갈등이 생긴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계가 직면한 두가지 상반된 제도적 방향에서 나온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건 전세계적인 경향이다. 동시에 그들은 세금으로 연구된 결과물을 모두 공개하라는 압박도 받는다. 이 논리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연구의 경우, 연구결과의 개방과 공동연구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양가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연구는 쉽지 않다.
과학사가 이두갑은 아서 콘버그라는 분자생물학자가 자신의 효소 냉장고를 모두에 공개하고, 신진 과학자의 정착연구비 제도를 만들며, 디엔에이(DNA) 연구를 제도화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그 중심엔 효소 냉장고가 만든 공동체적 문화가 놓여 있다. 아서 콘버그는 스탠퍼드대학교 생화학과를 디엔에이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이후 그곳의 한 연구자로부터 최초의 생명공학회사, 제넨텍이 탄생한다. 콘버그가 만든 공유경제의 바탕 위에서, 생물학 역사에서 가장 부자가 된 과학자가 탄생한 셈이다.
과학연구의 상업화는 되돌릴 수 없다. 그건 과학자의 욕심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가 과학에 부여한 욕망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에서 과학자들은 그 상업화의 수레바퀴를, 어떻게든 늦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간 유전체 계획에 끼어든 기업 셀레라에 맞서 존 설스턴은 인간 유전체에 매겨졌을지도 모르는 기업의 특허를 막아냈고,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과학자들은 유방암 유전자에 부여된 미리어드사의 특허에 소송을 제기해 이를 무효화했다. 과학의 공공도서관을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논문에 접근하게 한 것도, 유전체 서열을 모두 공공에 개방해 시민이 과학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도 모두 과학자들이다.
21세기, 과학은 변했다. 과학자는 더이상 연구하는 성직자가 아니고, 탐욕을 좇는 기업가도 아닌 그 어느 중간에 위치했다. 그 모습을 만든 건 사회의 욕망이다. 그러니 이제 과학자를 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공공성과 상업성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지닌 과학자의 실체를 직시할 때가 됐다. 바로 그 현실인식에서부터 논쟁이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