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이틀째인 14일 저녁 8시 평양 목란관에서 만찬이 시작됐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김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갑자기 연단으로 나섰다. “모두 축하해 주십시오. 두 사람이 남북공동선언에 완전히 합의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올렸다. 직전 회담에서 선언문의 서명 주체 등을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곡절 끝에 완성된 선언문을 보고받은 김 대통령이 즉석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발적인 상황이라 현장에 사진기자가 없었다.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의 요청에 자리에 앉았던 두 사람이 다시 연단으로 나와 그 순간을 재연했다.(<김대중 자서전 2>) 결국 그 연출 사진이 역사적 장면으로 남게 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2일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10월 두번째 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은 육로로 방북했다. 준비 단계에서 비서진은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을 남기기 위해 걸어서 지나는 안을 기획했다. 차로 넘으면 남는 게 차 사진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벤트를 싫어하는 노 대통령은 ‘회담 자체가 성과인 양 포장하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 결국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총대를 메고 ‘북측과 이미 합의했다’며 밀어붙여 승낙을 받아냈다. 실제 북의 동의를 얻은 건 그 뒤였다.(<문재인의 운명>) 군사분계선에 없던 노란 선을 새로 그었고, 노 대통령 부부가 그 선을 넘는 순간이 2차 정상회담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지난 4월 판문점 첫 만남 때부터 도보다리 대화로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8일 세번째 만남에서도 무개차 퍼레이드로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다. 20일 두 사람의 백두산 방문은 남북정상회담 사상 최초의 산상 회동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역사적 순간들이 이벤트를 넘어 평화·번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