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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한국의 미 / 이라영

등록 2018-09-26 18:16수정 2018-09-27 09:59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꽤 저항하는 태도를 보여주(리라 기대되)던 젊은 남성 창작자가 점차 주류의 문법에 편입되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다. 국가와 민족을 소재로 다루면 결국에는 다 비슷해진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나는 여전히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가장 좋다. <공작>은 긴장감 있게 흘러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민족에 목이 매이는 지루한 브로맨스로 마무리되는 한계를 반복했다.(넥타이핀과 ‘롤락스’ 시계를 친절하게 보여주는 서비스까지!)

이 영화에서 주인공 흑금성(황정민)이 여성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딱 두 번 있다. 두 번 모두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는 아니었고, “미인이다”라는 품평이었다. 연대든 적대든 모두 남성의 몫이다. 그들의 공작과 그들의 울분 속에서 그들의 밀고 당기기가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실제 2005년에 있었던 한 광고 장면을 재현한다. 남한의 이효리와 북한의 조명애가 함께 만나는 장면이다. 여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던 남성들은 이 광고에서는 무대 아래에 머문다.

여성은 재현의 주체는 될 수 없지만 재현의 대상으로는 잘 활용된다. 바로 남성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연대에서 여성은 일종의 ‘윤활유’ 구실을 위해 전면에 나선다. 나아가 이 여성 간에 만들어낸 재현에도 차이가 있다. 남한의 스타는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여 진보의 시간을 드러내지만 북한의 스타는 한복을 입어 민족 정체성을 더욱 부각한다.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을 보니 북한에서 한복은 역시나 여성의 몫이다. 꽃술을 들고 평양 시내를 가득 메운 채 남한의 정상을 환대하는 이들 중 한복을 입은 남성은 없었다. 남한 대통령 부부 중에서 잠시 한복을 입은 사람도 역시 영부인이다.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 취임식 때 한복을 입지 않은 영부인이었다. 그럼에도 남한 바깥에서 영부인은 ‘민족의 전통’이라는 한국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이 대통령일 때 남성 배우자가 있다면 부군이 한복을 입을지 상상해본다. 우리에게 딱 한 번 있었던 여성 대통령은 스스로 한복을 열심히도 입어줬다.

‘한국의 미’ 알리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것이다. ‘한국의 미’라는 모호한 개념 속에는 한국 여성에 대한 대상화가 포함된다. 외국에 걸릴 서울시 홍보 광고에 한복 입은 여성 실루엣이 야릇한 분위기로 들어간 적 있다. 여성이 주로 전통의 자리를 맡아두면 남성이 앞서 나아가는 진보의 상징을 맡는다. 일상에서도 결혼식과 장례식 복장에는 이러한 의식이 침투해 있다. 여성은 전통을 이끌어간다기보다 전통의 재현을 맡는다.

명절만 되면 차례상 간소화해도 ‘괜찮다’는 식의 글이 꼭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이 목소리의 주체는 대부분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차례상은 여성들이 도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의 얼굴을 한 전통의 기획자 목소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변화의 주도권마저 남성이 쥐고 있음을 부각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행하는 조상 수발 노동은 반드시 조상에게 예를 차리고 싶은 절절 끓는 효가 만들어낸 산물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이는 명절을 통해 가부장제에 수액을 주는 이벤트다. 평소에는 가장이라던 남성들이 명절 노동에서는 주도권을 ‘양보’하여 어머니와 아내가 무대에 오르게 한다. 여성을 활용해 전통을 재현하며 가족의 의미, 민족의 의미를 지키고 싶은 가부장제의 권력행위다.

한국의 미, 한국의 맛… 여성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는 유지가 안 되는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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