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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연설 / 고명섭

등록 2018-10-01 17:07수정 2018-10-01 19:31

문재인 대통령이 9월19일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능라도 5·1경기장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19일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능라도 5·1경기장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와 로마의 키케로(기원전 106~43)는 고대 서양 세계의 최고 연설가로 꼽힌다. 플루타르코스는 <비교 열전>에서 두 사람의 삶을 한 묶음으로 묶어 기술했다. 최고의 정치연설가로서 쌍벽을 이룬데다 두 사람의 삶에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데모스테네스는 마케도니아 제국의 침략에 맞서 아테네의 민주정을 지키려고 분투했고, 키케로는 몰락하는 공화정을 구해내려고 자신의 모든 정치역량을 쏟아부었다.

두 사람이 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연설 스타일에선 차이가 있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한다. 데모스테네스는 장중하고 엄격하고 진지했다. 키케로는 철학 지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익살과 풍자에 능했다. 키케로가 타고난 연설가에 가까웠다면, 데모스테네스는 노력형이었다. 젊은 데모스테네스는 지하 연습실을 만들어놓고 두세 달씩 살다시피 하며 말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천재성도 세상을 구하지는 못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키케로는 정적의 손에 머리와 손목이 잘렸다.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아테네 민주정도 로마 공화정도 역사의 늪에 묻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경기장에서 한 연설은 위대한 연설가들의 연설에 비하면 평범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쓴 대로 “불과 7분의 연설은 그 모든 평범함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연설을 완성시킨 것은 천둥 같은 함성이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강산을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호소에 15만명이 지르는 함성이 빠졌더라면 그 연설은 “위엄과 역사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남쪽 대통령은 평양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했고, 평양 시민들은 그 말에 응답했다. 연설이야말로 줄탁동시의 예술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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