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유엔사가 최근 남북의 경의선 철도 공동점검을 위한 비무장지대 통과를 불허한 것을 보고선, 미국이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에 머뭇거리는 건 역시 유엔사 때문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더 커졌다. 주지하듯이, 미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 주한미군, 이렇게 세 층위에서 이뤄진다. 이 중 연합사와 주한미군의 지위는 한-미 간 합의에 근거한다. 종전선언과 무관하다. 반면 유엔사 지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기초한다. 1950년 6·25 발발 이틀 뒤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유엔사의 임무에 대해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과의 전쟁이 끝나면 유엔사의 임무도 끝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는 공연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유엔사는 미군이 포기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애초 1954년 11월 체결된 ‘한-미 합의의사록’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은 주체는 유엔사였다. 미군의 한국군 작전 통제는 주한미군사령관의 유엔사령관 겸직을 통해 이뤄졌다. 또 미군은 일본에 한반도 유사시 자유롭게 사용할 후방기지 7곳을 갖고 있는데, 그 법적 주체도 유엔사다. 유엔사의 지위가 흔들리면 미군은 법적으로 이들 ‘유엔사 후방기지’ 사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엔사는 1970년대 유엔 총회에서 ‘해체 권고안’이 통과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1978년 11월 창설된 한미연합사에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넘긴 뒤 순수 정전협정 관리 기구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미군 내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 미군의 군사적 이해를 관철할 기구로 유엔사를 다시 호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월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 간 전작권 전환 합의 직전 기자회견에서 유엔사 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유엔사의 변화 모색도 같은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 7월 유엔사 부사령관에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이 임명됐다. 미국인이 아닌 제3국인의 보임은 처음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미국이 유엔사 직위를 연합사나 주한미군사의 간부가 겸직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유엔 참전국에 개방하고 있다며 이를 유엔사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라고 칭했다. 유엔사를 연합사나 주한미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군사기구로 강화하려는 흐름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지난달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남북대화가 계속되더라도 모든 관련 사항은 유엔사에 의해 중개·판단·감독·집행돼야 한다”고 밝힌 발언에서도 유엔사에 대한 기대가 느껴진다. 미국으로선 이런 유엔사의 지위를 흔들 어떠한 사태 진전도 자국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만 움켜쥐고선 새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움켜쥔 손을 펴야만 악수를 할 수 있고 새 변화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평양 방문에서 돌아온 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전하지 않았는가. 무려 68년이나 된 낡은 기득권에 연연하다 큰 그림을 놓칠 일이 아닌 것 같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7일 네번째 방북을 했다. 전향적인 접근으로 한반도를 항구적인 비핵·평화체제로 이끌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suh@hani.co.kr
이슈한반도 평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