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네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갈무리
‘공안’(公案)이란 선불교에서 스승이 제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려고 제시하는 역설적인 물음이나 문구를 말한다. 가령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한 조주 선사의 대답이 대표적인 공안이다. 불교의 근본 원리를 이 세상 너머 특별한 곳에서 찾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주의 스승은 남전 보원(748~834)이다. 이 선사에게 따라다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대부 벼슬을 하는 육긍이라는 사람이 남전을 찾아와 선사를 시험하려는 듯 묘한 질문을 던졌다. “옛날 어떤 사람이 큰 병 안에 거위 새끼 한 마리를 넣어 키웠습니다. 거위가 자라자 병목이 너무 좁아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거위가 죽게 생겼습니다. 자, 항아리를 깨서도 안 되고 거위를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면 스님께선 어떻게 그 거위를 꺼내시겠습니까?” 질문을 들은 남전이 손뼉을 세게 치면서 “대부!” 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대부는 놀라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전이 말했다. “거위는 벌써 나왔소.” 그 순간 육긍은 깨달음에 이르렀다.
선가의 수행자들은 공안을 붙들고 씨름한다. 하지만 분석적으로 따지거나 논리적으로 파고들어서는 답을 얻을 수 없다. 따지면 따질수록 질문에 사로잡혀 헤어날 길이 없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한순간에 전체를 보는 직관적 통찰이다. 미국 안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에 계속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 행정부 내부의 대북 강경파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회의론에 붙들려 끊임없이 그 의심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아다닌다. 이 사람들에게는 비핵화가 한 점 의혹도 없이 완료되지 않는 한 대북 제재 완화는 꿈도 꾸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래서는 불신의 병에 갇힌 거위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 믿음에서 출발하지 않고는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 북-미 정상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상호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불신은 불신을 키운다. 끈끈이 종이에 달라붙은 파리처럼 불신이라는 전제에 매달리는 한, 병 밖으로 나온 거위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