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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등록 2018-11-04 17:32수정 2018-11-04 19:12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력증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기사회>의 저자 주상윤은 이를 ‘밥그릇의 허기’라고 이름 짓고, 이런 정서적 식욕은 경제적 결핍 및 배제나 관계적 결핍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를 느끼는 ‘정서적 허기’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했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지난주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강연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며 불평등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여러 악영향을 경고했다. 예컨대 불평등한 나라나 지역일수록 우울증과 비만 등이 발병할 우려가 크고,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며, 학교 내 집단 괴롭힘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이자 공동연구자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 노선을 따라 중심부에서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해당 지역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점차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거주지에 따라 건강과 수명에 격차가 나타남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포럼에 참여한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칼럼니스트 사와다 야스유키도 토론에서 고소득자에 견줘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높게 나타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이들 학자가 밝힌 연구 결과의 공통점은 무얼까? 불평등한 사회가 빚어내는 갖가지 경험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생물학적으로 몸은 물론 정신과 심리에도 뿌리내려 뚜렷한 흔적을 새긴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생물학적 뿌리내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실 불평등 사회는 불가피한 필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 선택한 체제와 정책, 즉 정치의 결과다. 우리가 다른 상상,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바꿀 수 있으며 적어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몸과 마음에 불평등의 경험이 착근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상상과 다른 정치를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다. 바로 이 점에서도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감수성을 비롯한 심리적 측면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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