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음식은 옥류관 냉면이다.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 기업인들에게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했다는 자유한국당 공세에 냉면은 오만과 무례의 상징이 됐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옥류관 수석요리사를 데려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냉면을 낼 때만 해도 배려와 화해의 음식이었는데, 위상이 급전직하한 셈이다.
음식에 정치적 해석을 덧대는 건 흔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8월, 새누리당 지도부의 청와대 오찬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는 ㎏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송로버섯을 비롯해 캐비아샐러드, 샥스핀찜 등을 내놨다. 총선 참패로 위기를 맞은 여당에서 친박계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에 선출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청와대가 ‘호화판 상차림’을 벌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소탈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그의 죽음 뒤 여대생 가수를 불러놓고 양주 시바스리갈을 즐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8년 독재의 눈속임이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에선 청와대 칼국수가 상징성을 획득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청산 등 김 전 대통령의 거침없고 신속한 개혁을 상징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물론 대통령 인기가 시들해지자 녹용에 산삼으로 칼국수 국물을 냈다는 등 악의적 소문이 횡행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가 낸 만찬 메뉴 ‘독도새우’는 외교적 논란을 불러왔다. 일본을 향한 한국 정부의 메시지로 해석한 일본 정부는 고노 다로 외무상을 통해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공식 항의했다. 국내에선 새우 인기가 치솟았다.
많은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할 때마다 음식에 배려, 화합, 협치의 의미를 부여했다. 반목과 갈등을 넘어 화합하자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8월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 때 오색비빔밥을 낸 데 이어, 지난 5일 처음 출발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선 탕평채를 대접했다. 녹두묵과 고기볶음, 미나리, 김 등이 들어간 음식인데, 사색당파의 당쟁을 끝내고 화합을 모색한 영조의 ‘탕평책’에서 유래했다는 청와대 해설이 덧붙었다.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모처럼 12개 항의 합의문까지 내면서 탕평채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
신승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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