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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국정원의 목구멍 / 김남일

등록 2018-11-06 18:08수정 2018-11-06 19:14

김남일
법조팀장

북한 간첩이 있다면 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무슨 정보를 수집해 전달했는지 모르지만, 남한 재벌 총수들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따위 ‘겁박’에 목이 컥 막혀 냉면 가락을 뱉어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은 게 처음이 아니어서다. 북한 리선권과 한 테이블에 앉았던 손경식 씨제이(CJ)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7월 그 뜨거운 여름 청와대 근처 안가로 불려가 시원한 물냉면 한그릇 얻어먹지 못하고 박근혜 대통령한테 생돈을 뜯겼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평양에 경제인들을 데리고 가서 겁박을 듣게 했다. 이게 과연 정상이냐”고 했다. 돈 뜯다가 탄핵당한 대통령의 복권을 주장하는 태극기 부대도 한 식구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닌 거 같다. 게다가 삼성은 거저 뜯기지 않고 경영권 승계를 알뜰하게 얻어냈다. 재벌 총수가 5년짜리 대통령의 겁박이 무서워 돈을 냈다고 판결한 우리 법원부터 과연 정상이 아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이재용 부회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불러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평양에 가서 리선권의 지루한 ‘면스플레인’을 다시 들을 각오가 돼 있을 것이다.

청와대나 여당 해명처럼 리선권 발언의 실체가 모호하거나, 평양냉면은 이런 것이라며 친절히 알려주는 면스플레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논란으로 가장 배가 부른 이는 릴레이 냉면 먹기나 하는 철없는 야당 의원들이 아닌 국가정보원이다.

언론이 한가하게 재벌 목구멍이나 걱정하고 있을 때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냉면발 스르륵 넘어가듯 국가정보원법 개정 3년 유예 방안을 은근슬쩍 논의했다. 유예할 거면 아예 3년 뒤에 개정하자는 논의도 오갔다고 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대공수사권 이관 방향이다. 국정원과 여야는 대공수사 관련 첩보 수집과 각종 조사, 상황 관리 등은 국정원에서 하고, 마지막 단계에 다른 기관에 수사를 넘기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는 국정원이 다 하고 기소 시점에야 검찰에 넘기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뱉어낼 듯 입에서 오물오물하던 대공수사권을 도로 삼키겠다는 얘기다.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개정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맞장구쳤다고 한다. 국정원으로서는 불감청 고소원이다.

국정원 국감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았다. “국정원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혁을 추진해왔다. 국회가 국정원법 개정을 마무리해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 청와대는 지난 1월 경찰에 안보수사처를 만들어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맞춰 국정원 출신 김병기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85명이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상 어떤 정보기관도 국정원처럼 문제를 일으키고도 통제받지 않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공수사권을 이관해 순수 정보기관으로 새로운 도약과 역량 집중의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는 여당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 “검·경 수사권 조정도 매듭지어달라”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과 떼어놓고 진행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정원법 개정 유예 검토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대공수사권을 끄집어내기 위해 국정원 목구멍에 손가락이라도 집어넣어야 할 판이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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