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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혁신성장과 그 불만 / 조계완

등록 2018-11-11 17:58수정 2018-11-14 16:25

조계완

경제팀 기자

세상의 온갖 어지러운 소음과 잡음 저 뒤편의 깊숙한 안쪽, 사실상 ‘쪽방촌’이나 다름없는 고시원에서 일어난 외롭고 쓸쓸한 죽음이었다. 지난 9일 새벽, 서울 종로에 있는 고시원에서 난 불길에 고된 하루 노동으로 지쳐 깊이 잠들어 있던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 7명이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숨졌다. 빈소마다 통곡과 오열은 짧았고 깊은 적막과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2년 전, 기술공고를 막 마치고 숟가락·컵라면이 든 작업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던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겹쳤다. 소망과 좌절 그리고 불우한 생애…. 여러 뜨거운 생각들이 가슴에 고동치며 교차했다. 그날 오전,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경제는 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다”(공정경제 전략회의)는 ‘경제 윤리’를 들었고, 오후엔 새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개혁 완수”를 일성으로 외쳤다.

완수하겠다고 설파한 ‘구조개혁’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징하지 않다. 고시원 좁은 단칸방에 혼자 살았던 노동자들의 팍팍한 노동, 상실한 공정경제, 지체된 구조개혁을 가로지르며 관통하는 건 ‘기득권’과 ‘윤리’라고, 퇴근길에 나는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혁신성장은 주로 민간 기업·시장·신산업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경제의 공고한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거나 거대한 균열을 내는 또 다른 혁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구조개혁’은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경제 관료들이 허망하게 외쳐온 ‘완수하지 못한 상투어’로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취약 노동자와 정규직 사이의 노동시장 불평등 관계, 대기업과 중소·협력 업체 사이의 위계 관계, 창의적 기술과 역량의 진입 기회를 가로막는 견고한 기득권 울타리, 대마불사로 상징되는 퇴출장벽…. 기득권은 우리 사회경제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오랫동안 넓고 깊게 퍼져 있는, 딱히 잘 드러나지 않아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질병’이다. 노동·자본·기술이 결합한 한국 경제 생산함수의 그늘에, 지난 50년 개발연대를 뚫고 오며 켜켜이 누적된 기득권은 생산과 효율을 오히려 깎아 먹는 마이너스 투입요소이자 거대한 비용·손실 요인이다. 무슨 심오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요청되는 과제가 아니다. 기득권은 현실의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인 힘, 즉 사회경제적 권력‘관계’가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인간이 부여받은 가장 놀라운 축복 중 하나다. 그동안 자원의 동원·배분 과정에서 편중과 배제가 온존·강화해온 기득권 구조를 깨려는 시도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강남훈·정건화(한신대), 박종현(경남과학기술대) 교수 등은 요즘 사회적경제나 기본소득에 실천적으로 몰두하며 협동·협력·우정 등 ‘신뢰관계’에 기반한 혁신적 지역공동체 경제를 꿈꾸고 있다. 여전히 성장과 효율에 대한 열정에 갇혀 있는 혁신 경로는, 이제 일용직·청년 등 열패감에 빠진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잠재 역량을 키우고 확장할 수 있는 ’자유로서의 발전’(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궤도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에 책임감을 갖는 윤리적 열망, 나아가 기득권을 깨려는 용기가 진정한 혁신성장을 추동하는 엔진이다. 1936년에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일찍 드러나든 늦게 드러나든, 좋은 것에 대해서든 나쁜 것에 대해서든, 위험한 것은 기득이익이 아니라 사상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자기 시대의 한계와 제약 속에서 살고 사유한다. 노동자들의 좌절과 죽음 앞에, 지금 한국 경제에서 위험하고 나쁜 건 사상보다는 기득이익이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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