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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짜증 내지 마세요 / 김원영

등록 2018-11-12 17:53수정 2018-11-13 14:11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짜증 내지 마세요. 오랜만에 큰마음 먹고 오페라를 보러 갔더니 앞줄에 발달장애인이 다소 소음을 내더라도 말입니다. 연인과 차려입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시각장애인이 보조견이라고 큰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 있더라도요. 회사에 지각하기 직전 4차로를 막은 택시에서 나이 많은 어르신이 느릿느릿 나오느라 1분이 지체되었더라도요. 하필 업무를 보려는 그때 건물 뒤뜰 응급구조헬기가 소음을 내고 잔디를 짓밟으며 착륙하더니 어디서 많이 본 피곤한 얼굴의 의사가 급히 뛰어나오더라도 말입니다.

배려를 강요하면 되겠냐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일 년에 한 번 오페라를 보러 간 날 얼마간 소음을 일으키는 장애인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괴로운 일이 아니겠느냐고요. 왜 다른 관객에게 소음을 참는 배려를 강요하냐고요. 응급헬기는 사정이야 이해해도 정해진 착륙장을 국가가 많이 마련해야지, 사유지에서 피해를 감수하라기에는 좀 심하지 않냐고 말입니다.

저라도 짜증이 날 겁니다만, 그래도 내지 마세요. 왜냐고요? 그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길은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당신도 나이가 들어 30년 후에 택시에서 꾸물꾸물 내려야 할 수도 있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나 손자를 둘 수도 있지요. 교통사고를 당해 이국종 교수와 함께 헬기를 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는 이유로 설득하는 일은 (진실을 품고 있음에도)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는 사실 우리를 조금 모욕하지 않나요? 휠체어가 버스에 타는데 짜증 내지 않고 2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고작 당신도 ‘예비 노인/장애인’이기 때문이라면, 이건 그저 처할 위험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일과 다를 바 없잖아요.

게다가 이런 이유는 향후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적은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성을 배우자나 딸로 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혼주의자 남성은 여성의 밤길에 대한 공포와 생리와 임신, 출산 같은 과정을 고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국종 교수의 응급헬기를 탈 가능성이, 솔직히 얼마나 있을까요.

짜증을 내지 않을 이유에는 복잡한 정치철학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거 공부하자면 또 짜증 낼 거잖아요. 저상버스를 돈 들여 도입했더니 장애인들이 잘 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안 탈까요? 탑승객들이 짜증을 내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10년 만에 처음 오페라를 보러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선과 감정이 어딘가에 감옥을 설계하는 셈입니다.

당신이 개를 싫어하는데 레스토랑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들어오면 마음속에 짜증이 일어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짜증을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이익이 되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짜증 내기를 멈출 수 있는 존재인 걸까요?

참기 어려울 정도의 개 알레르기가 있다면 말하십시오. “이 강아지가 당신의 안내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아주 심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지금도 콧물이 주룩주룩 나와요. 오늘 저의 두번째 데이트입니다. 제가 먼저 음식을 먹던 중이니 개를 다른 곳에 맡기기가 어렵다면 잠시 뒤에 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 보조견의 주인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시군요. 그러면 제 보조견을 연인분이 잠시 맡아주실 동안 우리 둘이 먼저 밥을 먹을까요? 당신의 배려심, 그리고 개와 함께 보낸 시간. 사랑에 마음이 열리기 최적의 조건 같은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미안합니다. 글을 쓰다 짜증이 좀 나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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