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인구 늘리기’ 정책에 가려진 이면 / 황민호

등록 2018-11-19 18:10수정 2018-11-20 16:45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지역 소멸’이 회자되는 시기에 ‘인구 늘리기’는 농촌 지자체의 존폐를 결정짓는 주요한 사업이다. 5만명이 무너지고 3만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문을 닫아걸어야 할 만큼 자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것은 때론 피부로 다가온다. 하나둘 개업·폐업이 늘어나고 읍내 주요 상가 1층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지며 상가의 불 꺼지는 시간이 앞당겨지기 시작하면 지역경기의 침체를 체감한다.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주요 징후 중 하나는 면 지역 초등학교 학생 수의 감소이다. 단계는 마치 ‘매뉴얼’ 같다. 학생 수가 줄어들고 복식학급이 생겨나고 분교와 폐교 논의가 시작되면 사실상 게임 끝이다. 논의가 시작된다는 건 불안과 걱정을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한 움큼 얹어놓는 것과 같다. 대안과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견딜 것이냐 다른 학교로 통폐합될 것이냐의 선택지만 남겨놓은 채 고사시키려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통폐합은 막대한 예산과 당근으로 유인하고, 견디고 버티는 것은 ‘알아서 하라’ 수준으로 방치한다. 면 지역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읍 지역도 붕괴의 조짐이 보인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시즌에 순차적으로 나타나는데 인근 도시로 전학을 보내는 방법을 택한다. 아예 온 가족이 이사를 하는 집도 제법 많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는 농촌을 떠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됐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삶조차 버거워 무감하게 견디거나 지역을 떠나지 못해 눌러사는 경우도 많지만, ‘있는 사람’들은 영민하게 머리를 굴리며 재빠르게 갈아탄다. 문제는 대부분 이들이 ‘공무원’이나 ‘교사’라는 데 있다.

인구 늘리기 정책을 주요 사업으로 놓고 추진하는 공무원들조차 대전에 거주하면서 ‘옥천으로 이사 오라’고 홍보와 광고를 하는 이런 희비극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도처에서 발견된다. 사실 교사들은 상당 부분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다. 농촌 지자체에서 이사하는 가장 주요 요인이 ‘교육’이라고 모두 공감하면서 지자체가 교육경비에 손쓸 생각도 하지 않고 공무원, 교사들조차도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전한 ‘엑소더스’가 진행형인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역에 ‘청년이 없다’ ‘아이들이 없다’고 외치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본인 아이들 먼저 도시로 빼돌리고 서울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기숙사까지 제공하는 이 모순된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600여명의 옥천군 공무원 중에 절반에 가까운 270여명이 대전을 비롯한 외지에 거주한다. 군수가 옥천 거주 공무원에 대한 승진 가산점 카드를 꺼내들자, 6급 이상 공무원 중 몇몇은 원룸을 얻어가며 혼자 주민등록을 옮기는 진풍경이 일어나고 있다. 주민등록만 옮겨놓고 대전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도 있다. 위장전입과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이런 풍경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다.

국가도 한몫한다.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주지 못하는 지자체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규정’에 의해 교육경비 보조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못사는 지자체는 교육에 예산 편성 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물론 이런 규정들을 무시하고 대부분의 지자체가 지역의 필요에 의해 집행하여 사문화된 규정이지만, 법과 규정을 따지는 옥천군은 이런 규정을 너무 잘 지킨다. 도시와 농촌 사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은 이 때문에 더 가속화된다.

그리고 국가와 도교육감은 아예 도별로 학교 총량제로 묶어놓아서 농촌학교를 폐교시켜야 도시학교를 신설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에는 그놈의 ‘표’가 많다 보니 항상 ‘쪽’수가 적은 농촌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농촌은 문을 닫아야 한다. 농촌의 뿌리인 면부터 황폐화되고 있다. 농촌 지자체의 인구 늘리기 정책은 사실 가짜다. 숫자에만 집착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삐끼’같이 귀농귀촌 정책을 편다. 도교육청의 적정 규모 학교 육성도 가짜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적정 규모를 판단하는가. 작은 학교를 고사시키려는 술수이다. 지금 농촌에선 생각하는 척하면서 방치하고 오히려 고립시키는 정책들만 난무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