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판단을 공동체 다수의 상식에 맡기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이유다. 걱정하지 마시라. 대한민국은 백두칭송위원회 광화문 집회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다.
정치팀 선임기자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학술적으로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고 묶어서 부른다. 대한민국 헌법 19조 양심의 자유는 당연히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다. 1948년 제헌 의회에서 ‘사상의 자유’라는 표현을 명기하지 못한 것은 일제 강점기 치안유지법의 영향, 그리고 38선 이북의 김일성 정권과 소련 스탈린 체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가 지난 7일 결성됐다. 이 단체 회원 100여명이 18일 광화문에서 연설대회와 예술공연을 했다. 이른바 보수 시민단체들은 백두칭송위원회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저기서 “빨갱이 세상이 됐다”는 탄식이 들린다. 그런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법 전문과 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1조는 ‘민주공화국’, 8조는 ‘민주적 기본질서’, 32조는 ‘민주주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다. 헌법 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담담하다. “절대로 안 된다”며 태극기를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집회를 금지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집회를 막아도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판단을 공동체 다수의 상식에 맡기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이유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의 이른바 보수 성향 의원들은 요즘 걱정이 참 많다. 정우택 의원은 페이스북에 “타락한 종북 좌파의 행태가 대한민국을 망국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 대한민국은 정우택 의원이 걱정할 정도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한 발짝 더 나가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색깔론이다. 20일 아침 토론회에서 정진석 의원은 “대한민국은 동맹국인 미국과 국제사회 우방국들과 합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하는데, 거꾸로 대한민국이 북한과 합심해서 우방국인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문재인 대통령은 양쪽을 다 설득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북한만 바라보는 외눈박이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신을 좀 차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김무성 의원은 우리 정치를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로 보는 좀 이상한 정치인이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의심하는 이유가 뭘까? 그들 나름의 나라 걱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 세 사람은 아버지가 관료나 기업인 출신으로 꽤 유명한 정치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분단 기득권 세력의 생각을 지금 이들이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8년 들어서서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 협상은 분명 대한민국의 축복이다.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이루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은 막무가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질투와 증오에 눈이 멀어 현실에서 펼쳐지는 상전벽해를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면서 색깔론만 줄기차게 외친다. 가족과 최근에 나눈 대화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오래전에 배운 복잡한 수학 공식은 줄줄 외우는 치매 환자와 닮았다. 걱정하지 마시라. 대한민국은 백두칭송위원회 광화문 집회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다.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목함지뢰 사건 때 전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상한 병명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거나 부실하게 군 생활을 한 고위 인사들이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shy99@hani.co.kr
이슈한반도 평화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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