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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돌보는 법을 배운다면 / 김원영

등록 2018-12-10 18:44수정 2018-12-10 19:10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혼자 낮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이 출근하고 학교에 갔을 때였다. 10여년의 그 시간 동안 여러 마리의 개가 나와 함께 마당을 지켰다. ‘초롱이’라고 불린 개는 마르고 체구가 작았다. 그 어미가 초롱이를 자주 학대했다. 덩치가 큰 동생과 엄마에게 왕따를 당하던 그 개를 내가 자주 돌보았다. 휠체어도 없던 시기라 마당으로 가서 밥을 주지는 못했지만, 먹을 것이 생기면 초롱이를 몰래 방문 앞으로 불러 먹였다. 어미가 으르렁대며 초롱이를 찍어누를 때면 문 앞에 놓인 슬리퍼를 집어 던져 초롱이를 구했다. 초롱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가 초롱이를 어딘가로 팔아버리던 날 개는 눈치를 채고 할머니의 손을 벗어나 미닫이문을 열고 무력하게 밖을 내다보던 내게 달려왔다.

약한 생명을 돌본 경험이 나는 많지 않다. 장애가 있는 남성인 내가 다른 존재를 돌볼 계기는 많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엇을 돌보지도 않았다. 주거환경 탓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동물도 기른 적이 없다. 돌봄을 배우지 못했다. 나이가 든 뒤 부모님이 자주 아팠고 연인도 아팠다.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어려웠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병원에 들어가면 간호사도 간병인도 나를 보호자로 생각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환자의 식판을 치우는 일을 내가 하고 있으면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가 도와주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의 비극은 인구가 줄어 대한민국이 사라진다거나 노동력이 부족해진다는 문제가 아니라, 돌봄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구성원이 줄어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일정 시기 누군가의 돌봄으로 생존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에게만 위탁되었거나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수행된다. 가정에서는 중장년층 여성들이 돌봄을 전담하는데 그 돌봄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자발적으로 떠안으면 250만원을 준다는 사회정책의 목소리만 들린다.

특정 연령과 성별, 계층에 편중된 돌봄의 책무를 나눠야 하는데, 당위보다는 모두가 돌봄을 배우자고 제안하고 싶다. 자신을 돌볼 틈이 없이 타인만을 돌봐야 하는 ‘독박돌봄’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돌봄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이 살아간다. ‘돌봄을 배우는’ 주체는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만 해당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나 아이, 노인이 적정한 돌봄을 받는 사회는 좋은 사회이지만 장애인이나 아이, 노인이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회는 더 좋은 사회일 것이다. 일본의 노인요양원은 고양이를 돌보며 알츠하이머 노인들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였다. 다큐멘터리 <개와 함께>는 뇌전증(간질)이 있는 소녀가 서비스견과 함께 어떻게 치유와 안정으로 돌입하는지를 그려낸다. ‘독박돌봄’이 아니라면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를 돌본다.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에서 한 학교 선생님은 뒤뜰에 무용한 식물을 기른다. 왜 예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식물을 기르는지 주인공 맷 데이먼이 묻자 그녀가 답한다. “무언가를 돌보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죠.” 동물과 식물을 기르고, 도움이 필요한 장애 학생이 있는 교실을 상상해본다. 장애 학생은 개를 돌보고, 비장애 학생은 장애 학생을 돕는다. 개는 비장애 학생들을 돌본다. 돌봄이 순환한다.

내가 어머니와 연인을 위해 병원에서 식판을 나르고,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글을 조금이라도 쓰고 있다면, 분명 초롱이를 구하기 위해 슬리퍼를 던졌던 날들에서 얼마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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