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말라꼬. 내 살아온 거 들을라쿠몬 밤샐낀데…. 책이 열두권이라 안쿠나.” 내가 만난 할매들은 열이면 열 모두 이렇게 말했다. 올해 개인 작업으로 ‘할매열전’을 기획하고 취재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열일곱명의 할매를 만났고, 이들의 생애사와 현재 생활을 구술받아 정리하고 있다. 대상을 정하는 데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경남 지역에 살고 있는 65살 이상 농어촌 지역 여성 노인이었다. 지역과 계층을 막론하고 평생 자기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정부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여전히 버려두고 있는 건 아닐까 소박하게나마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매들을 만나면서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처음에는 손을 내젓던 할매들이 나중에 봉인 해제하듯 쏟아내는 기억과 경험에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겪어온 할매들의 70년, 80년 생애에는 지역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가 있었고 한국전쟁이 있었다. 지역에서조차 기록하지 않은 지역사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할매들이 장롱 깊숙이 또는 낡은 보따리에서 꺼내놓은 빛바랜 사진이나 건축대장, 졸업장 같은 것들은 귀한 지역자료였다. 산청군 이명자(75) 할매 사진첩에는 1963년 4월20일 금서양재학원 소풍 기념사진이 있다. 지리산 아래 골짝인 산청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당시 양재학원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진 속에는 10대 후반 소녀 30여명이 흰 웃옷과 검은 치마를 입고 나란히 앉거나 서 있다. 진학을 하지 못한 인근 10리 밖 마을 소녀들조차 양재학원을 다녔다 하니 아마 당시 서울, 부산 등 도시에 유행하는 양장점 보조 인력을 양성해서 보내던 곳인가 싶다. 사천시 안점숙(73) 할매는 1971년 남강댐으로 마을회치(회식) 간 사진들을 내놓았다. 1969년 12월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댐인 남강댐 완공 뒤 경남 전역에서 댐 구경을 하러 가거나 신혼여행을 왔다니 당시는 댐 건설이 지금으로서는 생각지 못할 관광자원이었다. 이들 사진에는 옛 남강댐이 있고 진주 진양호 전망대가 지금과는 다르게 2층으로 된 팔각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주시 문산읍 장복연(75) 할매가 내놓은 보따리에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농촌마을 부녀회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들어 있다. 1986년 7월 열린 진주 농협지도자교육 기념 책자에서는 당시 활동을 읽을 수 있다. 그때 불렀던 부녀회장반 반가 내용을 살펴보면, ‘협동을 배우려 교육원 가고요/ 저축을 할려면 조합에 가고요/ 생활물자 살려면 연쇄점 가고요/ … / 꼬끼오 장닭이 보기는 좋아도/ 암탉이 울어야 소득이 오르죠…’로 이어진다. 어느 때보다도 지역자치와 지역주권, 지역문화가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중앙에 집중된 돈과 권력, 사람을 이제야 서울·수도권 말고 ‘나머지’ 지역에 분배하겠다고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듯싶다. 문제는 오랜 정치·경제적 불균형 속에서 ‘나머지’ 지역이 지역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짧게는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 민족말살정책에 버금가는 서울·중앙의 지역말살정책이 이뤄져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역주민들은 그동안 지역사를 잃었으며 지역말을 잃었고 지역문화를 잃었다. 잃어버린 지역성을 어떻게 복원할 것이며 지역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마을 할매들의 생애사 구술을 정리하면서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근현대사를 배우고 지역사를 배우고 있다. 또한 할매들의 일상어를 통해 지역말과 지역정서에 대한 기억을 재생하고 있는 중이다. 할매들의 삶과 발 딛고 있는 마을에는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지역기록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마을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사람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지역기록화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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