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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핵 목록 신고’의 트라우마 / 박병수

등록 2018-12-12 18:30수정 2018-12-12 18:41

그래픽 김경숙
그래픽 김경숙
북한은 핵 목록을 신고한 경험이 몇 차례 있다. 그러나 결과는 불행하게도 애초 기대했던 ‘의혹 해소’와 이에 따른 ‘보상’이 아니라, 대체로 새로운 분란의 씨앗에 가까웠다.

북한은 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면서 핵 목록을 신고했다. 당시 신고 내용에는 영변의 5㎿ 원자로 등 16개 시설과 1991년 플루토늄 90g을 추출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는 현장 검증 뒤 북한이 더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전면 거부하면서 199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맞섰다. 이른바 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북한은 2008년 봄에도 6자회담 합의에 따라 20여개의 핵시설이 포함된 핵 목록과 영변 원자로 가동 기록 등이 담긴 8000쪽 분량의 문서를 미국에 넘겼다. 플루토늄을 30㎏ 추출해 6㎏은 실험에 사용했고 18㎏은 핵폭탄 3기 제작에 사용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북한은 제재 해제 등을 기대했으나, 미국은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 방안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안 된다며 거부했다. 이에 북한은 이듬해인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맞섰다. 6자회담은 그것으로 종언을 고했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납치자 13명 중 생존 4명, 사망 8명, 입북 확인 불가 1명”이라고 설명하며 생존자들은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일본은 납북자가 더 있다며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 또 북한이 전달한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 유전자 검사 결과 가짜로 나타났다고 항의했다.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호기롭게 ‘자진 신고’의 정공법을 구사했으나, 의도와 달리 분란만 확산시킨 꼴이 됐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여전히 북-일 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미국이 다시 북한에 핵 목록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과거 악몽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 리스트를 신고하라는 것은 공격목표 리스트를 제출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전한 바 있다. 북한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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