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베를 짜는 페넬로페와 페넬로페를 내려다보는 아들 텔레마코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제작된 항아리에 새겨진 그림이다.
서구 문명의 시원에 놓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의 기나긴 귀향의 모험을 그린 서사시다. 동시에 이 서사시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없는 20년 세월 동안 수많은 남자들의 구혼을 물리치고 베를 짜며 남편을 기다림으로써 서구 문화에서 ‘정절의 화신’이 됐다. 이 이야기의 앞머리에 구혼자들로 가득한 궁전의 큰 홀에서 음유시인이 영웅들의 고통스러운 귀향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2층 자기 방에서 베를 짜던 페넬로페가 이 노래를 듣다 말고 내려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그 노래를 멈춰 달라”고 청한다. 이때 텔레마코스가 나서 말한다. “어머니는 어머니 방으로 다시 올라가 어머니 일을 하세요. 공적인 발언은 남자들의 일입니다.” 페넬로페는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영국의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이란 책에서 이 장면이 여성이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보여주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여성의 권리 박탈을 보여주는 신화는 또 있다.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를 정복한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 집안 이야기다. 그리스 연합군 함대가 해신의 방해로 출항하지 못하자 아가멤논은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을 제물로 바친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이어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목숨을 빼앗는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어머니는 ‘존속’이 아니기 때문에 오레스테스의 살인은 정당한 복수에 해당한다고 선언한다. “어머니는 자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태아의 양육자에 불과하다. 씨를 뿌려 수태시키는 자가 진정한 생산자다.” 서양사학자 한정숙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장면이 ‘모권의 몰락과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비어드와 한정숙의 고전 해석은 페미니즘의 전복적 독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뒤집어 읽은 고전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