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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동문회’ 바깥의 목소리 / 이라영

등록 2018-12-19 17:54수정 2018-12-20 09:25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한 은행의 성차별적 채용 소식이 알려졌을 때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았다.(사실은 ‘질문’이 아니라 나를 훈계하려는 밑밥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비판할 줄 알았다. 성별에 따라 비율을 미리 정하여 성적과 무관하게 남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행위를 변호할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세상의 관념은 철벽처럼 견고하다. “평등, 좋지요. 그걸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입니다. 입사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자들은 정말 일을 못하거든요.”

이윤 추구를 위해 여성 배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남성을 선호해도 괜찮다는 괴상한 논리는 두가지 의문을 남긴다. 우선 이윤 추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이윤 추구가 공익보다 우선하는가. 여자들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입사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이 이윤 추구를 위해 배제시키는 행위가 정당한가. 둘째 과연 여자들이 일을 못한다는 생각은 사실인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모든 여성이 일을 하지 않는 날. ‘내부자들’의 세계에 익숙한 이들은 정말 남자들이 일을 더 잘한다고 착각한다.

<국가부도의 날>을 본 뒤 생각했다. ‘동문’과 ‘계집년’ 사이의 거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면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계집년’이 이끄는 조직과 상반되게 재정국 차관과 재벌 3세 등으로 구성된 ‘동문’들의 모임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극중 차관에 따르면 “여자들은 중요한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니까 정부 고위직에 여자가 없는 것”이다. 한시현처럼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여성도 아닌 나조차 숱하게 들어본 말이다. 여자가 하니까, 여자들은 아무래도 어쩌고저쩌고. 이 영화에서 한시현이 맡은 여성의 얼굴은 이 사회 비주류를 상징한다. 거대한 ‘글로벌 동문회’ 바깥에서 외치는 목소리.

이윤 추구가 최대 가치가 되니 당연히 돈으로만 연결되고 돈에만 반응하는 인간으로 뭉쳐 있을 수밖에. 나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좋아하지도, 이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추구하고 지향할 지점이라 여기지 않는다. 사람 중심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의 개념이 너무 협소하여 이런 소리조차 쓸모없게 느껴진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가까스로 망할 위기에서 살아남은 중소기업 사장의 20년 후는 저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부리는 모습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는 지금 우리의 현재다. 다시 스크린 바깥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최근 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젊은 노동자의 어머니다.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저주하는 마음으로 향하도록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나라를 저주하는 마음마저 외면당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두려운 건 이 사회 전체에 두텁게 올라오는 굳은살이다. 무뎌지는 감각. 또? 이 나라가 그렇지!

두달여간 공공부문에서 이어진 각종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모든 공공시설 투자에 민간자본의 참여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영리병원까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공공’이라는 개념은 이제 이윤 추구를 위한 ‘동문’들에게 잡아먹히는 모양이다. 노동자 김용균님의 마지막 공적 발언은 그의 손피켓에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 이 ‘동문회’ 바깥의 목소리에 응해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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