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영미권 영화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유난을 떤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게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웅변한다. 아니, 그날을 그렇게 보내지 못하면 불행한 놈이라고 협박한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본 독일 영화 <인 디 아일>(토마스 슈투버 감독)은 그렇게 불행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대형마트에 취직한 전과자 청년이 일을 열심히 배운다. 나이 든 선배의 익숙한 지게차 모는 솜씨에 매료되고, 옆 칸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반한다. 높은 천장까지 수직으로 솟은 진열대들이 노동자들을 가두는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름의 기하학적 미감을 내뿜기도 하는 이 마트는 독일 통일 이전에 동독의 운수회사가 있었던 곳이었다고 선배가 말한다. 감독관과 선배를 포함한 고참 노동자 대여섯명이 그 운수회사의 운전사였다가 마트가 들어서면서 여기로 취직해 대형트럭 대신 지게차를 몬다. 그들은 향수를 공유하며 산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일과 뒤에 마트 앞 빈터에서 맥주파티를 한다. 여기저기 대충 앉아 맥주 마시는 모습이 볼품없고 궁상맞다. 주인공 청년 옆에 그가 좋아하는 여성 노동자가 잠시 기대앉았다가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가고, 주인공은 너저분한 집에서 빨리 날이 밝아 일터로 가길 기다리며 잠 못 자고 뒤척인다.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꿀꿀한 성탄절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나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데면데면하고 썰렁해서 더 와닿는 격려 혹은 축하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았다. 영화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도 뭔가 버거운 것들을 툭툭 던졌다. 노동의 단순함과 지루함. 숙련된 노동에 대한 경외심도 선배 노동자의 텅 빈 삶이 드러나면서 그걸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는 노동의 조건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상황일 뿐이다. 그렇다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을 인생의 고독으로 확장해서 보기엔 과거 동독 노동자의 사연이 구체적이다. 노동, 소외…. 언제부턴가 확실한 대안 없이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비굴하게 두 손 들고 덮어버린 문제들. 영화는 거기에 하나 더 얹는다. 동독 노동자들의, 지금은 향수 속에만 있는 긍지와 자부심이라는 문제를.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이 영화를 보고 한반도 통일과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심란했단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영화는 말한다. 조건은 갑갑한데,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질 것 같지 않은데. 노동자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사는 세상이 올까? 믿을 만한 어떤 희망의 단서도 내놓지 않고서, 앞으로도 갑갑할 것 같은 예감을 잔뜩 깔아놓고서 평온한 표정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꼭 말수 적은 주인공의 태도 같다. 워낙 말이 없으니 주변 사람이 ‘괜찮냐?’고 물으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당신도 괜찮냐?’고 되묻는다. 크리스마스 장면까지 이어서 생각하면 영화가 이런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괜찮아요. 당신도 괜찮죠? 메리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나니 주변과 사람에 대해 좀 더 신경이 간다. 추운 겨울 거리를 콧김 내뿜으며 걸어가는 이들과 선술집에 잠시 들러 한잔하고 싶어진다. 영화가 미래에 대해, 희망과 절망에 대해 무슨 말을 한 게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금요일 을지로3가에서 밤 12시 조금 넘어 지하철을 탔다. 온통 20~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한잔씩들 했을 거다. 다른 때 지하철에서 만난 그 또래들보다 밝아 보였다. 난 맘속으로 ‘괜찮냐?’고 물었고 그들의 예사로운 모습이 대답을 대신했다. ‘괜찮아요. 당신도 괜찮죠?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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