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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집이 필요한 사람들 / 박주희

등록 2018-12-24 18:11수정 2018-12-25 13:22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지난 금요일 저녁,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 조촐한 추모제가 열렸다. ‘거리에서 죽어간 홈리스 추모제’. 한때 노숙인이었거나 지금도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이 모여 앉았다.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해마다 동짓날 즈음 모여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의 넋을 기린다.

추모제 시작을 알리며 노숙인들과 쪽방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똑같네, 내 사는 거랑 똑같네.” 뒷자리에서 누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은 새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용기 내어 마이크를 들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우리를 찾아왔다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이름 모를 이들이 저 무연고 사망자 명단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대구시 통계를 보면, 올해 대구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124명에 이른다. 2013년 45명과 이듬해 33명에 견줘 3배 이상 많았고, 지난해 116명보다 늘었다.

여성 노숙인의 고단한 삶을 1인극으로 풀어낸 추모공연은 해학적 웃음 뒤에 먹먹함을 남겼다. 주인공은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 전세 보증금마저 바닥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숙식제공이 되는 식당 일을 했다. 눈 오는 날 음식을 한가득 머리에 이고 배달을 가다 미끄러져 허리를 부러뜨리고 만다. 결국 치료비에 헉헉대다 노숙인이 되었다는 그녀의 사연은 빈곤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흔한 이야기였다. 거리에서, 쪽방에서 홀로 삶을 마감한 뒤에도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한 이름들 앞에 헌화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근 정부는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경계 2㎞ 거리에 새도시 4곳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연결해 서울 도심까지 30분 안에 드나들 수 있게 한단다. 서울을 지금보다 더 크게 크게 넓혀가는 그림으로 보인다. ‘강남지역 대체지’ ‘자족 기능 도시’를 내세우며 12만채를 더 지을 계획이란다. 더 많이 지어서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서울 가까운 곳에 새집이 얼마나 늘어나든 수도권 바깥에 살고 있으니 남의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

관심을 끄는 건, 새도시에 공공임대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다. 10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고시원, 판잣집, 쪽방, 여인숙, 피시방에서 사는 가구가 수도권 19만가구, 이외 지역은 18만가구에 이른다. 다양한 주거복지 정책들이 있지만, 여전히 그 안전망 밖에 있는 이들은 통계를 웃돌 것이다.

신도시 계획을 놓고 인구 감소와 새도시 공동화를 우려하는 시각과 서민 주거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복잡한 부동산 셈법을 떠나, 새로 짓는 집들은 투기꾼들이 아니라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다. ‘이번 생에 내 집은 포기했다’는 청년들과 젊은 부부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평생 주거 불안에 시달려온 서민들에게 내 집을 마련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민의 범주에조차 들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도는 이들도 안전한 집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면 좋겠다.

추모제가 열리는 내내 자리에 편히 앉아 있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 집값이 들썩일 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변변히 몸 누일 곳조차 없는 이들은 제대로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노숙인도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도 쪽방 사람들도 그저 거대한 도시의 낯익은 풍경으로만 스쳐 지나왔다.

추모제가 열리는 한편에서 동지 팥죽과 따끈한 어묵 국물을 나눠 먹었다. 추모 영상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자꾸만 목에 걸렸다. “도시 불빛을 이불 삼고 지내는 이 사람들은 방이 아니라 집이 필요하다.” 함께 외친 구호는 짧지만, 큰 울림으로 퍼졌다. “집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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