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정치팀 기자
이인걸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의 말석(막내) 검사였다. 당시 검찰은 대구·경북이나 고려대(TKK)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티케이도 고려대 출신도 아닌 이 검사는 핵심 공안부서에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민혁당 이래 최대 규모 반국가단체”라는 왕재산 사건의 주임검사도 그였다.
2012년 2월, 그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으로 발령났다. 공안검사였던 그의 중수부 연구관 발탁은 이례적이었다. 복수의 검사들은 당시 대검 중수부장의 보좌역인 이금로 수사기획관(현 대전고검장)이 데리고 왔다고 증언한다. 대검에서 연구관들은 그림자처럼 일하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 일가 내곡동 사저 땅 헐값 매입 사건 처리 과정에서 특히 그랬다. 수사 결과 발표 전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4 대 4로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이인걸 연구관은 이 자리에서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 이금로 수사기획관, 홍지욱 감찰부장과 함께 ‘죄가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 회의 내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이인걸은 참 웃기더라. (대검 수뇌부의 무혐의 의견을 그대로 반복하는) 완전 앵무새였다”며 혀를 끌끌 찼다. 공안부에서 그랬듯 중수부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법무부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에 파견돼 통합진보당 해산 작업에 매진했다.
까맣게 잊었던 그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들어가는데,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이라고 했다. 검찰을 떠나 김앤장에 몸담았던 그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의 변호인을 맡아 여러 차례 변론을 진행했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이런 내용을 기사로 썼더니 그는 해명도 남달랐다. “내곡동 사건 수사팀 결정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었으며 옥시의 변론에 관여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불기소 결정을 압박했던 ‘4 대 4, 8인 회의’에 참석했던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본인은 중수부 ‘미관말직’에 불과했다는 주장이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인 홈플러스의 변호인을 맡았던 그였지만 ‘옥시’의 대리인이었다는 환경단체의 잘못된 보도자료가 나오자, ‘옥시를 변론하지 않았다’며 마치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사건과는 무관한 것처럼 주장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예봉을 피하는 ‘미꾸라지’ 같은 대응이었다.
조금만 톺아보면 탄로날 그의 꼼수 해명을 거듭 기사로 지적했지만 청와대는 그를 선임행정관으로 ‘안고’ 갔다. 게다가 특감반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이번 특감반 파문을 놓고 민간인 사찰이니 아니니 말들이 많지만 특감반장이 근무 기강을 잡지 못한 점만은 분명하다. 특감반원들의 평일 골프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외근 많은 감찰 근무자들의 업무 특성 탓’이라고 둘러댔지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특감반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특감반원들이 외근을 많이 해도 당연히 퇴근은 청와대에 돌아와서 하게 했다. 카드 줘서 절대 밖에서 얻어먹게 하지도 않았다. 지금 나오는 얘기들은 참여정부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과 청와대에 충성을 다하고 세상이 바뀐 뒤에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던 이인걸·김태우 두 사람이 이제는 ‘불법 사찰을 했네, 안 했네’ 하며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감반 보고서의 불법성이 다분하다며 본인이 작성한 문건을 자유한국당에 통째로 갖다 바치는 대한민국 6급 공무원 김태우의 행각도 엽기적이지만 그를 ‘반문재인 투사’로 키운 청와대 민정 라인은 무능하다. 선의만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유전자론’으로는 이 무능을 덮을 수 없다. 이인걸 특감반장은 사표를 냈지만 그를 중용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과 조국 민정수석의 책임은 정말 없는 건가.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으면 본인만 아픈 게 아니라 대통령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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