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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조끼들이 던지는 물음

등록 2019-01-03 18:29수정 2019-01-03 19:38

촛불 ‘혁명’을 이야기한 한국의 새 대통령, 프랑스의 젊은 새 대통령 모두 처음에는 상당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노동자가 굴뚝에 올라야 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새로운 봉기에 나서야 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2019년이 밝아왔다고 하지만 새해에도 바뀌지 않는 광경들이 있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는 스타플렉스의 두 노동자(홍기탁, 박정호)가 세해째 계속 농성 중이다. 노사합의를 이행하라는 지극히 소박한 요구인데도 사쪽은 묵묵부답이다. 오늘도 두 노동자는 사시사철 늘 그랬듯 투쟁 조끼 차림으로 칼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삼성의 노동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나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 노동조합 조끼 말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작년 가을에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에 항의하며 시민들이 노란 조끼 차림으로 거리에 나와 폭력 시위도 불사한다. 대통령이 사과 성명을 발표해도 통하지 않는다. 이 운동의 성격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마크롱 정부의 부유세 폐지 조치가 시위를 촉발했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자인 지방 소도시 서민들이 주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비록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두 나라이지만, 벼랑 끝에 선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 조끼와 프랑스 시위대의 노란 조끼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2017년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 촛불 ‘혁명’을 이야기한 한국의 새 대통령, 프랑스의 젊은 새 대통령 모두 처음에는 상당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노동자가 굴뚝에 올라야 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새로운 봉기에 나서야 한다.

두 나라 헌법에 따르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나라 헌법 모두 주권이 시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다. 세상에 권력이란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만 있을 뿐이며, 모든 시민은 주권자로서 평등하다. 헌법이 약속하는 이 질서를 우리는 ‘민주주의’라 부른다. 이 약속이 허언이 아니라면, 각 공화국은 투표로 확인된 주권자들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야 마땅하다. 즉, 대통령이 바뀌면 세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헌법이 그리는 세상과 같지 않다. 헌법 문구에는 등장하지 않는 또 다른 권력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권력들이 헌법이 말하는 유일한 권력보다 훨씬 위에 있다. 민주주의와는 다른 질서가 엄연히 공존하는 것이다. 이 질서에서는 권력이 사람이 아니라 화폐로부터 나온다. 또한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마다 권리가 다르다.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 질서다. 이 질서 때문에 한국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과 사진 찍는 데 그토록 열중하고 프랑스 대통령은 시위대에게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부자들 세금 줄이는 일만은 그러지 못한다.

지금 한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이 두 원리, 두 질서가 충돌하고 있다. 헌법 속 민주주의의 약속과 자본주의 현실이 부딪치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대세는 아직 후자다. 지난 세기에 잠시 몇몇 나라에서 복지국가를 통해 화해가 이뤄지는 듯 보였지만,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를 거치며 이는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촛불 ‘혁명’을 거쳤다는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촛불항쟁은 이 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를 열어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곳곳에서 ‘조끼’들은 묻는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인가?” 2019년에도, 아니 21세기 내내 이 물음은 더욱더 강한 어조로 반복되고 확산될 것이다.

물론 지난 세기에도 인류는 이 물음과 씨름했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잠정적 해법에 도달했다. 어쩌면 21세기의 여정 역시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운데 어느 쪽을 위에 두고 문제를 풀어갈지는 지금부터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지금 정당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치 세력의 첫번째 과업은 이 시대가 맞닥뜨려야 할 선택을 제대로 제시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조끼’들의 항의를 성실히 통역해 이렇게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남성 대 여성’ ‘공정 대 평등’처럼 한국 사회를 더욱 미로에 몰아넣는 논쟁 구도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도 이런 진짜 선택지의 등장이 더 늦춰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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