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기자 “앞으로 항상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이번엔 다르다.” 세밑에 만난, 매주 국내 이코노미스트들로부터 경제 동향을 청취하고 있는 자본시장 고위 관계자가 울적한 어조로 한 말이다. 새해 벽두부터 코스피는 우리 경제 안팎의 여러 방아쇠들이 한꺼번에 동시 접속·발화되면서 ‘플래시 크래시’(순간적 급락)가 일어나고, 전문가들이 불과 몇달 전에 썼던 낙관적 경제전망들은 속속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서 휴지통에 버려지고 있다. 시장이 짓눌리고 발작하자 투자자와 경제·금융 정책 당국자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금융시장 향방에 하루 종일 시선을 고정한다. 흔히 경제적 불만의 계절이 닥치면 이런 세태에 민감하게 올라타 날로 점증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 경제정책에 화살을 돌리는 ‘정치경제적 반동’이다. ‘소득불평등 성장’, ‘포용 성장의 역설·역주행’을 내세워가며 “최저임금 인상 등 선의의 포용 정책을 이제 폐기해야 할 때”라고 외친다. 비상한 진단은 늘 필요하다. 몸의 이상신호를 미리 알려주면 진짜 위기를 막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진단’도, 특정 집단의 당파적 이해를 담은 고약한 ‘처방’도 늘 경계해야 한다. 비즈니스는 본래 시장에서 부침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모든 경제지표는 변동 ‘추세’가 중요하다. 여러 통계를 보면 2010년을 변곡점으로 우리 경제의 ‘등뼈’ 제조산업에 쇠락 징후가 확연하고, 제품 경쟁력에서 근육 허약상이 일제히 드러난다. 두 시기(2000~2010년과 2010~2017년)의 연평균 증가율을 비교하면 제조업 생산은 9.5%에서 2.4%로, 수출은 10.5%에서 2.8%로, 부가가치는 9.2%에서 4.5%로 떨어졌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1년 1분기(81.3%)를 정점으로 매년 하락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1분기에 71.0%까지 떨어지며 ‘장기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 1인 이상 제조업체의 일자리(404만명·2016년) 증가율은 2010년 4.54%에서 2015년 2.16%로 줄어들더니 이미 2016년에 0.04%로 거의 멈춰버렸다. 요컨대 “포용 경제정책으로부터의 궤도 이탈이 필요하다”며 위기론을 설파하는 반동은 사태 자체를 잘못 파악하거나 일부러 뒤틀고 있다. 지난 1~2년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노동 등 ‘새 정책변수’는 지금 한국 경제의 ‘우울’을 설명하는 합리적 요인이 되기 어렵다. 고용·소득지표 악화도 2010년 이래 제조업 심장박동이 장기적이고 현저하게 둔화한데다 불평등한 산업생태계로 대표되는 혈액순환 질병이 누적되면서 날로 커져온 것이다. 산업이 혈기를 잃으면 자본가·투자자보다는 사회경제적으로 뒤처진 취약계층의 고용·소득부터 차별적으로 고통과 희생을 요구받기 마련이다. 경제학 풍자 웹사이트에 자못 날카로운 익살이 있다. 고장난 전구를 갈아 끼우는 데 몇명의 경제학자가 필요할까? “아무도 필요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 고장난 전구의 불균형 상태를 고치게 될 테니까.” “몽땅 다 필요하다. 고용과 소비를 창출해야 하고, 총수요 곡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야 하니까.” 앞은 시장근본주의자, 뒤는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다.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이고 신봉할 만한지 말할 자리는 아니다. 다만 학설마다 지향하는 사회경제적 계층·집단은 분명히 다르다. 전구가 왜 고장났는지, 어떤 새 전구로 갈아 끼울 것인지 같은 한국 경제의 ‘장래 경로’를 둘러싼 골치 아프지만 시대적인 큰 질문들이, 때때로 출몰하는 시장 발작에 묻혀서는 안 된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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